"샴푸 가득 리필해주세요."
시향을 해보고 제품을 택한다. 화장품 조제자격증을 보유한 전문 조제관리사에게 리필을 요청한다. 조제관리사가 기계에서 해당 제품 라인의 레버를 열어 전용 용기에 제품을 덜어준다. 양을 측정해 가격을 메기고 제조번호, 조제일자 등이 담긴 스티커를 붙여준다.
마치 아이스크림 가게 같은 이 곳은 아모레퍼시픽이 새롭게 선보인 '리필 스테이션(refill station)'. 쓰레기를 남기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일환으로 지난 10월 20일 아모레스토어 광교 매장에서 시작한 후 하루 평균 30여명이 이용한다. 소비자에게 아이스크림을 시식하듯 향기로 제품을 고르는 재미와 함께, 친환경적 구매로 '착한 소비'를 했다는 보람까지 안겨준다는 전략이다.
유통업계에 '그린슈머' 잡기 경쟁이 치열하다. 그린슈머는 친환경적이면서도 가치 소비를 중요하게 여기는 고객을 말한다. 초기엔 친환경 포장재를 쓰거나 포장을 간소화하는 식으로 필(必)환경 경영을 부각시켰다면, 지금은 소비자가 직접 체험하는 등 재미 요소를 주면서 관심을 유도하고 있다.
이마트는 성수점과 트레이더스 안성점에서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리필하는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진행 중이다. 전용 용기를 가지고 매장을 방문하면 본품 가격의 35~39% 할인된 가격에 세제를 리필할 수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한 곳에서 하루 20건이 판매됐을 경우 연간 1,095kg의 플라스틱 절약 효과가 기대된다.
친환경 마케팅은 특히 유튜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홍보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최근 빙그레가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실시한 저탄소 실천 캠페인 '분바스틱'은 SNS를 타고 이목을 끌면서 1차, 2차 모두 조기 마감됐다. '분바스틱'은 다 마신 바나나맛우유 공병을 재활용해 만든 것으로 손쉬운 분리배출을 도와주는 도구다. 이마트의 에코 리필 스테이션도 유튜브에 소비자들의 체험기가 이어지면서 입소문을 탔다.
이마트 관계자는 "작은 부분이지만 친환경을 위한 노력에 동참한다는데 소비자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며 "여기에 소신있는 소비를 자랑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유튜브로 표출되면서 이목을 끈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백화점에선 환경을 보호하는 고객에게 VIP 등급을 선물하는 이벤트도 내놨다. 현대백화점은 플라스틱 용기 가져오기 등 8가지 친환경 활동에 참여한 고객에게 엔트리 VIP 등급인 '그린' 혜택을 제공하는 행사를 10월 진행했다. 등급을 부여받은 고객은 혜택 기간 동안 현대백화점카드로 정상 상품을 구매하면 5% 할인 받을 수 있다. 해당 이벤트에는 약 1만여명이 참여해 1,130명이 '그린' 혜택을 가져갔다.
대부분 수익성 있는 모델이라 보기 어렵고, 기업윤리 차원에서 진행하는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만, 업계에서는 결국 매출 상승을 위한 장기적 투자라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제품과 포장이 고급스러워야 구매로 이어졌지만, 지금은 고가의 친환경 제품에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고 있다”며 “단순히 고급스러운 제품이 아니라 ‘친환경’ ‘젠더 이슈’ 등 스토리가 담긴 제품이 팔리는 시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