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준의 야구수다] '강화 레벨'이 다른 포수 양의지의 방패

입력
2020.11.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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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이닝 무득점, 두산 타선은 끝없이 침묵했다. 득점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절호의 기회를 수 차례 놓쳤다. 그때마다 NC의 방어는 빛이 났고, 그 중심엔 포수 양의지가 있었다.

마지막 경기가 된 6차전 두산의 2회초 공격 1사 만루에서 허경민이 섰다. 초구와 2구 모두 커터였고, 파울이었다. 초구부터 치려는 의욕이 넘쳤다. 더 잘하려는 부담감에 평소 허경민의 모습보다 스윙이 강하고 커져 있었다. 3구도 역시 덤비는 타자에게 유효한 낮은 변화구였지만 이번에는 구종을 바꿔 포크볼이었다. 2회 들어 계속해서 2스트라이크 이후 안타를 허용했던 투수의 심리가 반영됐고 원바운드 볼이었다.

4구째, 다시 커터였다. 포수가 투수와 사인을 교환한 뒤 자리 잡고 앉아 있는 반대 코스로 공이 가는 속칭 반대 투구였다. 타석에서 순간 엉덩이를 뒤로 빼며 물러선 타자 허경민처럼 포수도 순간 놀라고 제대로 대처하기가 쉽지 않은 공이었다. 공을 포구할 수는 있어도 대개 미트가 밀리면서 볼 판정을 받기 쉽다. 그런데 루친스키의 반대 투구를 포구한 양의지의 미트는 스트라이크 존에서 밀리지 않고 버텨냈다. 루킹 삼진이었다. 이 공 하나로 양의지는 포수로서 기본인 포구의 가치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위기에 몰린 투수와 팀을 어떻게든 도와서 막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잡아낸 정말 멋있는 플레이였다.

4회초에도 위기는 계속됐다. 선두 타자 호세 페르난데스의 안타에 이은 오재일의 2루타로 순식간에 무사 2ㆍ3루가 됐다. 타석에는 박건우가 들어섰다. 시리즈 전반에 부진했지만 5차전 마지막 타석에서 3루타를 쳤고, 첫 타석에서도 안타를 쳤다. 초구는 몸쪽 투심이었다. 몸 가까이 깊게 들어갔고 볼이었다. 2구째는 바깥쪽 커터, 다시 스트라이크 존을 많이 벗어났다. 양의지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아마 ‘2ㆍ3루 주자가 모두 들어와 2실점까지는 괜찮아도 최근 부진한 타자 주자를 내보내서 그 이상의 실점은 안 된다’고 말했을 듯하다.

3구째 다시 시작, 몸쪽 투심이었다. 깊게 들어온 공이었지만 타자의 방망이는 나왔고 파울이 됐다. 박건우의 반응은 몸쪽 코스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차전 2번째 타석과 3번째 타석 모두 몸쪽 코스 대응에 실패하며 물러섰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게 느껴졌다. 4구째 커터였지만 다시 한번 반대 투구였다. 이번에는 볼이 되는 코스였지만 몸쪽 코스에 눈을 두고 있었던 박건우의 방망이가 돌아갔고 타이밍이 늦으면서 헛스윙이 나오고 만다. 5구째 마지막 공은 변화구 커터였다. 코스는 들어왔지만 높았다. 2ㆍ3루 위기 상황에는 위험한 공이었지만 몸쪽을 강하게 의식했고 기억했던 박건우의 방망이는 공의 윗부분을 때리며 1차전과 같이 빗맞은 3루 땅볼이 나왔다. 절대 득점 기회의 첫 타자가 땅볼로 잡히면서 연속 이닝 무득점의 어두운 분위기는 더 커졌고 박세혁, 허경민이 모두 내야 땅볼 처리되면서 무사에 3루 베이스를 밟고 있었던 페르난데스는 홈에 들어오지 못하고 말았다.

양의지는 상황을 정확히 읽고 마운드 위 투수에게 확률 높은 방향 제시한다. 그리고 타자의 작은 움직임을 놓치지 않고 그 안에서 타자의 생각과 심리를 읽어냈다. 그의 연륜 속에서 모든 게 보였기에 과감하게 결정할 수 있다. 모든 포수 리드의 기본이지만 5차전과 6차전에 보여준 양의지의 리드는 같아 보이지만 '강화 레벨'이 달랐다.

이번 한국시리즈는 ‘양의지 시리즈’라고 불릴 만큼 모두가 그에게 거는 기대가 엄청났다. 그의 활약에는 단 1%도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오히려 모두가 그의 존재를 잊을 만큼 당연시됐다. 오랜 기억 속에도 이만한 신뢰를 받았던 특별함은 많지 않았다. 그리고 특별함 속에는 그에 반하는 엄청난 압박감이 숨겨져 있기도 했다. 실제 시리즈 전부터 있었을 큰 속앓이에 시리즈 중반 잠시 흔들리기는 했다. 하지만 이내 스스로 바로 잡았고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그 기대에 걸맞게 아니 그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힘을 보여줬다. 양의지는 양의지였다.

특별했던 2020시즌 통합우승 NC 다이노스, 창단 9년 만에 리그의 왕이 됐다. 누구 한 사람의 힘이 아니었다. 모두의 힘이었다. 통합우승이라는 강력한 미션은 혼자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주 작은 힘부터 팀을 지탱하는 기둥의 힘까지 한데 모아서 모두가 이뤄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가치다. 그리고 NC의 우승 축하 세리머니, 모든 선수에 둘러싸여 ‘집행검’을 뽑아 하늘을 찌르듯 높이 들어 올렸다. 주인공은 NC 주장 양의지였다. 선수들의 리더, 주전 포수 그리고 4번 타자, 모든 역할이 완벽했다. 그는 집행검의 진정한 주인이 돼 모두의 축복 속에 검을 뽑아 들 충분한 자격이 있었다. NC의 창단 첫 우승에 모두와 함께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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