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ㆍ2위 항공사의 속전속결 ‘빅딜’이 발표되면서 통합을 진두지휘한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의 승부수와 한진칼 이사회 의장인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17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밑그림은 산은이 그렸다. 특히 이 회장은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과의 아시아나 매각 협상이 결렬 수순을 밟자 컨티전시플랜(비상계획)에 따라 즉각 한진그룹을 포함해 삼성, 현대차, SK 등 7개 그룹에 인수 의사를 타진했다.
이후 한진이 유일하게 긍정적 답변을 내놓으면서 협상이 가시화됐고, 이 회장이 그룹 경영진과 수 차례 접촉하며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이 회장은 동시에 관련 정부부처 설득 작업을 벌이며 협상 테이블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산은은 아시아나항공을 채권단 관리 체제로 편입해 정상화한 뒤, 항공산업 회복 이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었다. 그러나 항공사 운영 경험이 없는 산은이 코로나19 와중에 불황에 빠진 산업을 헤쳐나가야 하는 부담이 컸다. 국책은행으로서 두 항공사 모두에 자금 지원을 해야 하는 부담도 고려됐다. 빅딜은 산은의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던 셈이다.
이번 빅딜은 이 회장 특유의 추진력과 결단력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전임 산은 회장들이 지난 20년간 풀지 못했던 대우조선해양, 금호타이어, 동부제철 등 골치덩이 자회사 매각을 취임 1년7개월만에 해결하면서 ‘구조조정 적임자’로 불려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이해당사자의 고통분담이라는 구조조정 1차 원칙 대신, 국민 세금(정책자금)을 이용한 재벌 기업으로의 매각이라는 상대적으로 ‘쉬운 길’을 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번 통합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도 일정 역할을 했다는 후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통합 작업은) 산은이 한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지난 4월부터 한진칼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김 전 위원장이 채권단의 제안을 한진그룹이 받아들이는데 일정 조언을 했을 뿐 아니라 물밑에서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조율 작업에도 나섰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과 김 전 위원장이 경기고 동기(68회)인데다 김 전 위원장이 경제위기 때마다 현안을 도맡아 처리하며 ‘대책반장’으로 불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김 전 위원장이 직접 설계를 하거나 다리를 놓지 않았더라도, 경제계에서 잔뼈가 굵은 데다 정치권과도 연이 닿아있다는 점 때문에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