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인득도 피해자예요. 가해자는 진주시장, 국가죠. 돌볼 수 있었는데 돌보지 않았으니까요.”
지난해 4월 경남 진주시 한 아파트에서 조현병을 앓던 안인득이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대피하는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렀다. 5명이 숨지고 16명이 부상당한 이 사건은 잠재적 범죄자로서의 조현병 환자에 대한 두려움을 다시금 부추겼다. 그러나 정신과의사 안병은의 생각은 다르다. 지역사회 내에서 철저히 설득하고 치료했다면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기에, 안인득 역시 피해자라는 것이다.
최근 출간된 그의 책 ‘마음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한길사)은 이처럼 정신질환자를 배제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우리 곁의 이웃으로 맞아들여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지역사회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다양한 사회적 기업을 설립해 정신장애인 직업재활을 도와 온 저자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다. 17일 서울 중구 순화동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정신병원에 갇혀있는 10만명의 환자 중 80%는 바깥에서 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정신병원의 탈수용화와 좋은 입원 치료, 퇴원 이후 정신질환자가 지역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의 마련이다. 이를 위한 전범으로 1978년 정신보건혁명을 통해 국립 정신병원 90%를 폐쇄한 이탈리아의 사례를 든다.
“물론 이탈리아도 병원을 없앤 직후에는 사고가 많았죠. 환자들이 지역 사회로 나오긴 했는데 그대로 노숙자나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어요. 하지만 반대로, 그 전에 병원 안에서 죽임 당한 사람은 얼마나 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해요. 지금 이탈리아는 정신질환자의 강력범죄가 현저히 줄었어요. 편견 깨는 작업이 최소 몇 십년은 걸리겠죠. 하지만 그 길밖엔 없어요”
이 같은 탈수용화 정책과 지역사회 돌봄 논의는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나 외래치료 명령제도 등의 논의는 미국이나 유럽 국가에서 이미 1950년대부터 활발히 이뤄져 왔다. 한국에도 지역사회마다 정신건강복지센터가 있지만 제대로 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다. “시설은 많이 만들었는데 모양만 갖추고 끝이에요. 일단 상근하는 의사가 없어요. 센터와 의사, 사회복지사가 함께 협업해서 직접적으로 사례관리를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불가능하죠.”
국가가 나서지 않았기에 직접 실험했다. 환자를 먼저 찾아가 주사를 놔주었고, ‘함께 살기’를 실험하기 위해 카페, 운동화 빨래방, 편의점, 농장을 설립하고 정신질환자를 고용했다. 가장 최근에 세운 것이 충남 홍성군에 있는 ‘행복농장’이다. 물론 다 성공적이지는 않았다. 장사가 잘 되던 카페도 정신질환자가 일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부터는 손님이 뚝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방정부나 기관에 손 벌리지는 않았다. “정부가 주는 썩은 고기를 뜯어먹기는 싫어서”다.
비슷한 이유로 그는 장애인들이 일하는 작업장의 가격대가 낮게 책정되는 것을 반대한다. “장애인들이 만든 커피를 1,500원에 파는 건, 그들이 만든 커피는 후지다는 편견을 강화할 뿐”이라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에게 적합한 직업이 뭐냐고 저에게 물어보세요. 그러면 저는 ‘당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이라고 답해요. 돈, 창의성, 전문성이 모두 필요한 그런 직업들이요. 불쌍하니까 도와달라는 게 아니에요. 정신질환자들과 충분히 같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