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그룹 조원태 체제 확정? 지배권 '캐스팅보트'는 산은이 쥐었다

입력
2020.11.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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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호 전 회장 별세후 가족간 경영권 분쟁에 시달리던 한진그룹은 이제 조원태 회장 체제로 굳어지는 걸까.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빅딜'의 파트너로 일단 조원태 회장을 선택했다. 산은의 투자 지분이 더해지면, 당장 3자 주주연합(KCGIㆍ조현아ㆍ반도건설)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조원태 회장은 확실히 승기를 잡게 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정부가 조원태 승계를 돕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지만 산은은 단호한 표정이다. 이번 투자로 한진그룹의 지배권을 좌우할 '캐스팅 보트'를 쥐게되는 만큼, 조원태 회장이 경영을 잘못할 경우 언제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3자 연합은 아직 실체가 불분명"

16일 산은에 따르면, 산은은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에 총 8,000억원을 투자해 자회사인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돕고 대신 한진칼 지분 약 10%를 확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산은은 조원태 회장이 보유한 한진칼 주식 약 386만주를 담보로 잡았다. 조 회장이 3자 주주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인수합병의 주체로 조 회장을 선택한 것이다.

조원태 회장 측보다 오히려 지분이 더 많은 3자 주주연합 대신 조 회장을 택한 배경에 대해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3자 주주연합은 특정 목적을 위해 모였을뿐, 경영권을 행사할 만한 아직 실체가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도 “우선은 한진그룹의 동일인(총수)인 조원태 회장과 거래를 진행하는 게 맞다”고 본 것이다.

지금은 조원태 밀지만...

조원태 회장은 산은이라는 든든한 원군을 확보했다. 한진칼에서 조 회장 지분은 우호지분을 합쳐도 41.3%로 3자 주주연합(46.7%)에 약 5%나 뒤져있다. 하지만 산은이 약 10% 지분으로 조 회장을 지원하면 각종 결정에서 여유롭게 3자 주주연합을 따돌릴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산은은 "영원한 건 없다"는 입장이다. 산은은 이번 유상증자로 한진칼 주식 약 706만주를 확보해 총 주식(약 5,917만주)의 약 10%를 차지하게 된다. 이 정도 지분으로 3자 주주연합과 결합할 경우에는 언제든 그룹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 산은이 한진칼의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에 산은은 앞으로 조원태 회장의 경영을 지속적으로 평가하며 견제할 방침이다. 산은은 이날 “오너 일가의 윤리 경영을 감독하기 위해 윤리경영위원회를 설치할 예정”이라며 “산은이 직접 주주로 참여해 오너 및 경영진의 건전 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감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은이 한진칼의 중요 지분을 가진 상태에서 여차하면 다른 경영진을 세울 수도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자 연합 "모든 수단 동원해 야합 막겠다"

정부의 파트너에서 밀려난 3자 주주연합은 당장 반발하고 있다. 지난 15일엔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대상으로 산은 대신, 자신들이 참여하겠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생각은 다르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인수합병 구조는 다른 주주나 시장 돈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며 “산은이 굳이 한진칼에 주주로 들어가는 건 산은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을 계속 컨트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결국 정부가 조원태 회장 중심의 빅딜을 강행하자, 3자 주주연합 중 한 곳인 KCGI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이번 거래는 조원태 회장과 산업은행의 밀실야합”이라고 비난했다. KCGI는 “국민 혈세로 한진그룹 경영권을 방어하고 아시아나항공까지 인수하려는 시도를 강력히 반대한다”며 “법률상 허용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를 저지할 것”이라고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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