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혜진(21ㆍ롯데)에게 2020 시즌은 고구마 몇 개에 목이 메인 듯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5월에 개막한 이후 출전하는 대회마다 컷 통과는 물론 톱10에 들길 반복했지만, 정작 우승이 터지질 않았기 때문이다. 톱10에 들 때마다 대상 포인트가 쌓이다 보니 시즌 막바지엔 최종전을 치르지도 않은 채 대상이 확정됐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사상 처음으로 우승 없이 대상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었다.
최종전 이전까지 15개 대회에서 13개 대회에서 톱10을 기록했음에도 우승이 없어 더욱 답답했다. KLPGA 투어 최종전인 SK텔레콤-ADT 캡스 챔피언십을 앞둔 최혜진은 해탈한 모습이었다. 그는 “(우승 욕심을)다 내려놨다”며 “대회가 몇 개 남아있을 때만 해도 쫓기는 마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막판이 되니 마음이 더 편해졌다”고 말했다. 욕심을 낸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시간이 지나 깨달은 셈이다.
그런 그가 결국 마지막 남은 우승 기회를 제대로 살려내며 가슴을 뻥 뚫어낸 ‘사이다 우승’을 거뒀다. 최혜진은 15일 강원 춘천시 라비에벨 컨트리클럽 올드코스(파72ㆍ6,747야드)에서 열린 KLPGA 투어 최종전 SK텔레콤-ADT캡스 챔피언십 최종 3라운드에서 3언더파 69타를 기록, 최종합계 12언더파 204타로 정상에 올랐다. 아마추어 시절 거둔 2승을 포함해 KLPGA 투어 통산 10승 고지에 오른 최혜진은 우승 상금 2억원을 보태 상금 랭킹도 5위까지 끌어올렸다.
전날 2라운드까지 안송이(30ㆍKB금융그룹)에 한 타 뒤진 채 2위에 머물렀던 최혜진은 이날 파5 5번 홀에서 마법 같은 샷 이글로 분위기를 완전히 뒤집었다. 1~4번 홀에서 파를 기록하면서 선두 경쟁에서 밀려나는 듯했지만, 5번 홀에서 70야드 거리 웨지 샷이 그린 위를 한 번도 튕기지 않은 채 곧장 홀 컵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른바 '덩크 샷' 이글인 이 한 방이 사실상 이날의 승부를 갈랐다.
신인왕을 이미 확정한 유해란(19ㆍSK네트웍스)이 막판 공동 선두로 치고 올라오며 맹추격 했지만, 최혜진은 끝까지 우승을 지켜냈다. 유해란은 마지막 승부처였던 18번 홀(파4)에서 통한의 보기를 기록했고, 최혜진은 같은 홀에서 두 번째 샷을 핀과 약 3.5야드 거리에 붙인 뒤 침착히 투 퍼트로 마무리했다. 우승을 거둔 그는 동료들의 축하를 받은 뒤 끝내 눈물을 터뜨렸다. 재작년 2승, 지난해 5승을 거두면서도 좀처럼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그가 이번 시즌을 얼마나 답답한 마음으로 보냈는지를 보여준 장면이다.
경기 후 그는 “시즌이 진행될수록 ‘우승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자신감도 줄어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막상 우승을 하고 나니 그런 생각을 왜 했나 싶지만, 확실히 (앞선)9차례 우승보다 10번째 우승이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샷 이글 순간에 대해 “핀 방향으로 정확히 가는 걸 봤다”며 “공이 핀에 맞는걸 보고 공이 멀리만 안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걸어갔는데, 그린 쪽에 있던 분이 들어갔다고 해서 기뻐했다”고 떠올렸다. 이제 그는 미국 최고 권위 여자골프 대회인 US여자오픈 무대로 향할 예정이다.
이날 3타를 줄인 김효주(25ㆍ롯데)와 4언더파 69타를 친 장하나(28ㆍBC카드)가 공동 3위(10언더파 206타)로 대회를 마쳤다. 김효주는 상금왕, 평균타수 1위를 확정했고, 다승(2승) 부문에서도 박현경(20ㆍ한국토지신탁) 안나린(24ㆍMY문영)과 공동 1위에 올랐다. 첫날 홀인원과 7언더파 65타를 친 디펜딩 챔피언 안송이는 코스레코드 상금(200만원)과 홀인원 부상인 6,350만원짜리 벤츠 승용차를 받아 아쉬움을 달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