퀄컴 "화웨이 수출 허가 받았다"... '트럼프 中 장벽' 조금씩 무너지나

입력
2020.11.1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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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향해 전방위 압박에 나섰던 미국의 봉쇄 전선이 느슨해지고 있다. 중국 기업에 대해 전면 불허했던 수출 허가 영역에 균열이 보이면서다. 덕분에 미중 무역 갈등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던 화웨이에도 숨통이 트일 조짐이다. 업계 일각에선 최근 끝난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 대신 내년 백악관 입성을 예약한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유연한 중국 제재 방침에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퀄컴은 13일(현지시간) 미국 상무부로부터 화웨이에 대한 수출 허가를 받아냈다. 퀄컴 측은 "우리는 LTE(4세대 통신) 제품을 포함한 여러 제품 수출 면허를 받았다"며 "LTE 제품은 모바일 기기와 관련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9월 본격적인 제재가 시작된 이후 전세계 반도체 기업 중 화웨이 수출 허가를 받은 곳은 퀄컴이 처음이다.

이번 수출 허가로 화웨이는 당장 한 시름 덜게 됐다. 미국 제재 발효 직전 급하게 비축해둔 스마트폰용 칩 재고가 내년 초 소진될 것으로 확실시 된 마당에 나온 조치여서다. 스마트폰용 칩 공급에 애를 먹었던 화웨이에게 퀄컴의 이번 수출 허가는 오랜 가뭄 끝에 내린 단비와 같은 꼴이다. 업계 관계자는 "비록 기술 경쟁이 치열한 5G 분야에서는 칩 조달이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전세계적으로는 여전히 LTE 시장이 크기 때문에 발등의 불은 끌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기적으로는 퀄컴에도 이득이다. 화웨이가 퀄컴 칩에 더욱 의존하는 생태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엔 퀄컴에서 조달해 온 화웨이의 반도체 규모가 크지 않았다. 퀄컴 칩은 화웨이의 중저가 모델에만 사용됐고, 고가 스마트폰 제품엔 화웨이의 자체 개발 칩을 사용했다. 하지만 올해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화웨이는 칩 생산을 포기했다. 미국의 기술이나 장비 없인 반도체 생산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결국 퀄컴 입장에서도 이번 수출 허가로 연간 2억대 규모의 스마트폰 생산업체인 화웨이를 주요 고객으로 잡아둘 수 있게 된 셈이다.

업계에선 내년 '바이든 시대'가 열리면서 찾아올 변화를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도 중국 견제론엔 트럼프 대통령과 동일하다. 다만, 극단적이거나 강경한 자세로 일관해 온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선 원만한 해법 찾기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백악관에 입성한 이후, 해결해야 할 자국 내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중국 기업에 지금처럼 압력을 가하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퀄컴 이후 국내 기업을 비롯한 더 많은 기업들에 화웨이 수출길을 허용해 줄 것이란 시나리오에 힘이 실리는 배경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화웨이 수출 허가를 받은 기업은 인텔, 삼성디스플레이, 소니 등 6곳으로, 수출 품목은 디스플레이 패널과 이미지센서 등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반도체 업체들은 미국 상무부에 수출 면허를 신청한 상태지만 아직 허가를 받지는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화웨이는 물론 국내 기업들도 미국 태도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며 "불확실성이 심한 상황이지만 기대감이 높아진 분위기"라고 전했다.

곽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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