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엘레지

입력
2020.11.13 18:00
22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한국경제 도약의 순풍을 타며 한때 국내 1위, 세계 7위의 해운선사로 눈부시게 성장했던 거함 한진해운에 균열이 생긴 건 2006년이다. 그해 오너 2세였던 고 조수호 회장이 50대 초반 나이로 타계했다. 회장을 맡게 된 아내 최은영씨는 글로벌 해운사를 이끌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던 듯싶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진해운의 운명을 갈랐다. 그 전까지 10년 가까이 이어진 호황을 믿고 장기 용선계약을 통해 선복량(적재능력)을 크게 늘린 게 화근이 됐다.

▦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불황으로 원자재 수요가 급감하고 가격이 급락하면서 해운 수요도 급전직하했다. 호황에 기대 각국 해운업체들이 앞다퉈 선복량 확대 경쟁을 벌인 뒤끝이라 타격은 배가됐다. 생존을 위한 ‘덩치싸움’이 본격화했다. 세계 1위의 공룡 해운사인 ‘머스크’가 운임 인하 치킨게임을 주도했다. 2014년부턴 한진해운 위기가 본격화했다.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M&A를 통해 한진해운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되레 경영 혼란이 심화했다.

▦ 불황 속에서 글로벌 해운업계에 ‘규모의 경쟁’이 불붙자, 자국 해운업을 지키려는 각국의 노력도 치열했다. 중국은 막대한 지원금을 투입해 M&A를 촉진함으로써 자국 해운업의 덩치를 키우는데 주력해 단숨에 세계 3위의 ‘차이나코스코’를 출범시켰다. 일본 역시 자국 3대 해운사의 컨테이너 부문 합병을 성사시켰다. 우리 역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을 합병하는 방안이 거론됐으나, 결국 2017년 2월 한진해운을 파산시키는 선택을 했다.

▦ 기업이 침몰하는 순간까지도 이어진 오너 일가의 모럴해저드와 무능이 지탄을 받았다. 그럼에도 산업정책 면에서는 5대양 6대주에 걸친 한진해운의 운송망과 해운동맹 기득권을 어떻게든 살려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어설픈 ‘시장원리’만 내세우며 끝내 파산을 선택함으로써 세계 5위로 꼽힌 한국 해운업의 근간을 스스로 무너뜨린 큰 실책을 범하고 말았다. 요즘 운임 상승에, 수출품을 싣고 나갈 배편조차 없어 업계가 난리라고 한다. 한진해운의 빈 자리가 아쉽고 또 아쉽다.

장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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