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질문이지만 또다시 던져봐야만 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미국에 곧 새 행정부가 탄생한다는 뜻이다.
미 행정부가 새로 출범할 때마다 북한은 핵 도발을 감행해왔다. 국제원자력기구(NPT) 탈퇴를 선언하고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1호를 발사한 게 빌 클린턴 행정부가 막 들어선 1993년이었고, 고농축우라늄(HEU) 개발을 시인하며 2차 핵위기를 가져온 게 조지 부시 행정부 초반이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출범한 2009년에 2차 핵실험을, 오바마 2기 행정부가 출범하자 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미 본토 타격 능력을 증명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형을 발사한 것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첫 해였다.
미 행정부 교체 시기 전략 도발의 목적은 뚜렷하다. 후순위에 밀려 있는 북핵 문제를 앞으로 끌어와 새 행정부와 거래선을 트겠다는 것이다. 북핵이 최대 안보 이슈인 우리 입장에서야 동맹국 미국이 북한 문제만을 들여다 볼 것 같지만 꼭 그렇진 않다. 이란 문제, 이슬람국가(IS) 테러 대응, 남중국해 갈등 보다 대체로 후순위로 밀려나 있었고, 밀려 있는 걸 앞으로 끌어오자니 위기감을 일거에 끌어올릴 수 있는 충격파가 필요했을 것이다. 미국에 새 행정부가 들어설 때 마다 북한이 핵 출력을 높여야 했던 이유다.
바이든 행정부 초입에서 북한이 또 다시 핵도발을 감행할 개연성은 충분하다.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협상에 “폭력배(김정은)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라며 거부감을 드러내온 바이든은 일단 전임 행정부의 대북정책 전반을 깐깐하게 재검토할 것이다. 대북정책에 관여할 새 외교안보 라인 구축도 빨라야 내년 4,5월 정도다. 그 사이 한미 간 군사 훈련(3~4월)까지 치러진다면, 북한으로선 마냥 참고 기다리기 쉽지 않은 시간이다.
반면 이란 핵문제 해결 프로세스는 초반부터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은 ‘미국의 리더십 회복’을 대외정책 주요 기조로 삼고 있다.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 핵합의(JCPOA)를 복구한다면, 영국·독일·프랑스·중국·러시아 등 핵합의에 동참했던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미국의 위신을 다시 세울 수 있다. 현재로선 정치적 리스크가 큰 북핵 문제보다 다수 국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이란 핵합의 문제에 먼저 관심을 둘 공산이 크다. 북한으로선 거친 한 방으로 바이든의 관심을 끌어내보겠단 유혹을 느낄만한 상황이다. 올해 초 “머잖아 새로운 전략 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복선까지 깔아 놓은 터다.
남은 임기 문재인 정부의 역할은 뚜렷해진다. 북한이 전략 도발에 나서지 못도록 막아야 하는 것. 또 한번 도발에 나설 경우 이번에야 말로 전례 없는 제재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협상판이 꾸려질 때까지 기다리고 참아달라 설득해야 한다.
한때 북미 정상 간 중재자를 자임했던 문재인 정부로선 성에 차지 않는 작업일 수도 있겠다. 종전선언 같은 달콤한 꿈을 꿨던 게 불과 얼마 전인데 이제는 도발 정국을 걱정을 해야 하는 처지니 말이다.
하지만 어찌 종전선언만 기억되랴. 미 행정부 교체기 마다 반복돼온 핵도발의 악순환을 끊고 협상판에 온전히 앉히는 데 성공한 정부 또한 드물었다. 이것만 성공시켜도 문재인 정부의 작지 않은 외교적 성과로 기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