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는 제도를 중시하고 대화가 통하는 지도자다. 트럼프ㆍ아베 시절의 한일 관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것이다.”
조 바이든 당선인의 백악관 입성은 최악으로 치달아온 한일 관계에도 많은 변화를 예고한다. 지난 4년 간 한일 갈등을 '당사자들끼리 풀어야 할 문제'라며 사실상 방치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은 ‘한미일 3각 협력’을 중시하는 동맹주의자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처럼 한일 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방식으로 대중국 견제에 나설 것이다.
문재인 정부 초대 일본대사를 지낸 이수훈(66) 경남대 석좌교수는 9일 진행된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바이든 당선인은 한일관계의 공정한 중재자가 될 것으로 본다”며 긍정적으로 기대했다. 물론 미국의 개입이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미일동맹이 더 끈끈하다면, 강제징용 배상 판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등 한일 갈등 이슈를 일본 편에 서서 중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전 대사는 “스가 총리는 대화가 통하는 실용주의자다. 지금 한일 모두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보자는 분위기가 있는 만큼 진척이 있을 것으로 본다”며 “그렇다면 바이든 행정부에서 어느 한 쪽에 무게를 실어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갈등과 관련해 트럼프 정부의 역할을 평가하면.
“동맹에 전혀 관심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 관계를 방치했다. 워싱턴의 오랜 전통은 동맹을 중시하면서 한국 일본을 다 끌어들여 한미일 안보는 물론, 여러 분야에서 협력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기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지금 한일관계가 악화된 데는 당사국인 한일 양국에 1차적 책임이 있지만 미국의 조정자 역할이 부재했던 것도 컸다.”
-바이든이 한일관계에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보나?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기대한다. 주요 동맹국인 한일이 계속 티격태격하면 동북아에서 미국의 입지가 좁아질 수 있으니 관계를 개선하라는 압박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
-바이든이 ‘공정한’ 중재자가 아닐 수도 있지 않나. 바이든 캠프가 일본에 더 가깝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의 성격은 다르다. 미일 동맹은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미 군정이 일본에 주둔해 현대 일본의 정체성을 만드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가 정치 경제적으로 도약하고 위상이 높아지면서 바이든 입장에서 한국도 소중한 파트너가 됐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미국은 위안부 합의를 놓고 일본을 압박했다. 바이든이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놓고 우리 정부를 압박할 가능성은?
“바이든 정부가 중재 역할에 나서되 강제징용 등 과거사 문제는 깊숙이 개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사안이 간단치 않은 만큼 개입 후 갖게 될 부담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미국이 어느 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순간 다른 한쪽은 잃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잘 정리에서 미국에 지속적으로 설명해 나가야 한다. ”
-일본은 바이든 당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일본도 미국의 개입을 원하는 상황인가?
“트럼프 집권기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속된 말로 트럼프를 구워 삶을 수 있었다. 골프를 같이 치면서 비위를 맞춰 주는 식이다. 그러나 트럼프, 아베라는 특이한 지도자들이 움직이는 그런 시대는 지났다. 스가도, 바이든도 그런 부류가 아니다. 그런 면에선 바이든은 일본의 손쉬운 상대가 아닐 것이다. 다만 스가는 물론 바이든도 제도의 테두리 속에서 커온 정치인이다. 밀월 관계까진 아니더라도 정상적 시스템 하에서 미일동맹이 잘 관리될 것이다.”
-스가 시대의 한일관계는 어떨까? 대사 시절 경함한 스가 총리는 어땠나?
“아베가 본인의 관점에서 외교를 했다면, 스가 내각에선 외교의 중심이 외무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주일대사 시절 관방장관으로 만났던 스가 총리는 실용주의자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특히 대화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한일 갈등 사안에서 다른 인사들은 일본의 입장만 늘어놓기 일쑤였으나 스가 총리는 내 얘기를 귀담아 들었다. 한일 관계를 자기 정치에 활용했던 아베와는 다를 것이다. 스가 측근인 가와무라 다케오 한일의원연맹 간사장이 지난달 방한해 박지원 국정원장과 여야 대표를 두루 만나고 박지원 국정원장이 일본을 방문해 여러 인사들을 접촉하는 것을 보면 양국 모두가 한일관계를 아베 집권기 때처럼 가져 가선 안 된다는 공통된 고민을 갖고 있는 것이다.”
-스가 총리가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올림픽에서 6자회담 참가국 정상의 만남을 언급했다. 도쿄올림픽이 제2의 평창동계올림픽이 될 수 있을까.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북측이 전격 참가하면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의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이번에 스가 총리가 도쿄올림픽 때 6자 정상회담을 하면 북핵문제 해결의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은 굉장히 주목할 만하다. 이전에는 북핵 문제에서 일본이 훼방 놓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일본의 새 총리가 북핵 문제 해결과 6자 정상회담을 언급한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