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시대] 가시밭길 예상되는 바이든 행정부-WHO 재결합 여정

입력
2020.11.12 04:30
협력 경시 트럼프 탓 美 보건정책 불신
WHO 내 미국 협력 기반도 모두 와해
"국제기구 미중 알력도 변수 가능성↑"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이 10일(현지시간) 전 세계 우방국 정상들에게 한 일성이다. 고립주의를 탈피해 미국을 다시 존경받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당장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저지가 발등의 불이다. 자연스레 보건 분야 다자 협력의 필수 파트너인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미 탈퇴한 터라 만만치 않은 여정이 예상된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바이든 당선인이 추진하는 WHO 재가입은 미국 보건ㆍ정치 환경에 대한 세계의 깊은 불신 속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포스트 트럼프 시대를 맞아 차기 행정부가 다른 국가들과 코로나19 협력을 시도하는 자체가 미국의 동맹 복원 의지를 보여 줄 시험대라는 의미다. 그간 WHO를 “중국의 꼭두각시”라고 부르며 공중보건 협력을 경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WHO의 권위를 약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다자주의를 이끌어 온 최강국 미국의 능력에 지구촌이 회의를 품는 기폭제가됐다.

우선 바이든 행정부가 다자협력을 재건하려면 골이 깊어진 미국사회의 분열부터 치유해야 한다. 트럼프 행정부 4년간 지속된 ‘미국 우선주의’ 기조가 사회에도 뿌리 내려 동맹 필요성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적어진 탓이다. 양당의 전례 없는 이념 양극화로 의회 헤게모니에 따라 탈퇴와 재가입이 반복될 수 있는 점도 장애물로 꼽힌다.

무너진 것은 신뢰만이 아니다. 물리적 협력 기반도 와해된 상태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WHO에 다시 들어가더라도 과학적 협력 관계가 붕괴된 것은 되돌리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건분야 비영리단체인 카이저패밀리 재단의 제니퍼 케이츠 이사는 “미국 내 WHO 백신 협력 개발 기관은 현재 모두 문을 닫았고, WHO에서 일했던 미국 과학자들도 모두 활동을 그만뒀다”고 전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올해 6월 과학자 및 외교 관리들에게 국가안보와 공중보건에 국한해 제한적으로 WHO에 협력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미국이 빠진 틈새를 중국이 빠르게 메워 WHO의 역학 구도가 달라진 점도 바이든 행정부의 협력 추진을 방해할 수 있다. 반(反)트럼프 정책 기조를 표방한 바이든 당선인이지만, 중국 문제에만큼은 강공책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미국이 WHO의 코로나19 기원 조사의 신뢰성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며 조직 내 불협화음을 보도했다. 같은 날 세계보건총회(WHA)에서 WHO의 코로나19 기원 조사단을 향해 “투명한 방식으로 협상되지 않았다”고 비판한 개럿 그릭스비 미 보건복지부 국제정세부 국장의 발언을 문제 삼은 것이다. 반면 중국은 "WHO의 지속적인 리더십 역할을 지지한다”며 조사단을 옹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현재까지 재가입 외에 WHO에 기여할 세부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170여개국이 참여한 글로벌 백신 공급 체계 ‘코백스 퍼실리티(COVEX Facility) 가입’ 여부도 아직 불투명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저개발국에 백신을 공급하는 단체 성격에도 중국 편향의 WHO가 관여할 수 있다는 이유로 참여를 거부했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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