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에 직장 직위까지? '사생활 침해' 인구조사 논란

입력
2020.11.10 16:00
5년마다 진행되는 인구주택총조사
사생활 침해하는 질문 물어 누리꾼 "불편"
통계청 "사회 변화상 자세히 담으려고" 해명
"혼자 산 기간은 얼마나 되었습니까? 결혼 생활을 처음으로 시작한 때는 언제입니까? 이 가구는 자동차를 주로 어디에 주차합니까?"

5년 만에 진행 중인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의 질문 리스트 중 일부다. 시민들은 해당 조사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같은 불편한 질문들을 포함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물 뭐 마시냐, 자녀 사망했냐" 등 민감한 질문도 불쑥불쑥

5년마다 진행되는 인구주택총조사는 국가 정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인구·가구·주택 기초 자료를 만든다. 국내 사회통계 중 유일하게 읍·면·동 단위까지 자료를 제공한다. 행정자료를 활용한 전수조사와 국민 20%를 대상으로 한 표본조사를 함께 한다.

지난달 15일 시작된 이 조사는 지난달 31일까지 컴퓨터와 모바일을 이용한 인터넷 조사 방식으로 진행됐고, 이달 1일부터 18일까지는 조사원의 방문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올해 질문은 45개다. 그 밑에 하위 문항이 더 들어가 있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7가지 질문을 새로 포함했다. △1인 가구라면 혼자 사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려동물이 있는지 △물은 생수를 마시는지, 정수기를 쓰는지 △혹시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지 등이다.

그런데 시민들 사이에서는 일부 질문 내용이 너무 사적이고 민감하다며 '사생활 침해' 아니냐는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출산한 자녀 중 사망한 자녀가 있는지', '재혼의 경우 초혼의 시기가 언제인지' 등이 그 예다.

누리꾼 "굳이 왜 묻는지…사생활 침해한다" 불만


이에 누리꾼들은 불편하다는 시각을 보였다. "개인 비밀 사생활 다털린다"(ko****), "공산당이냐"(si****), "무슨 입사 면접보다 더한 것을 캐묻냐"(hy****), "저녁 8시에 누가 벨 누르길래 집에 없는 척했는데 문 앞에 인구조사로 방문했다고 쪽지 붙이고 갔더라고요. 면전에 대고 저런 걸 20~30분 동안 대답하고 서 있을 생각하니 짜증이…"(yo****)는 등 불만을 토했다.

이 같은 질문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집주인에게 임대 내역을 나라에 신고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면서 임대인지 자가인지 왜 말해야 하는거지? 정말 인구조사를 하는 거라면 가족이 몇인지가 중요한 거잖아"(da****), "너무 불필요한 정보가 많음. 결혼기념일, 음력생일이 무슨 정책 반영에 필요한 데이터인가요."(무명), "회사명, 회사 위치, 직위, 가족들 것까지 세세히 적어야 하는 이유가 뭔가"(sa****) 는 등의 반응이 나왔다.

비판의 목소리는 정치권에서도 제기됐다.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은 10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현장조사 과정에서 개인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질문이 많아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개인신상에 관한 질문 중 '부부가 침실을 따로 쓰는지', '사생아가 있는지' 등 불편한 질문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구주택총조사의 목적은 국가, 시도, 시군구에서 국민 삶에 직결되는 주택, 일자리, 복지 등의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라며 "조사과정에서 주민들의 사생활 침해 등 부수적인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 2017년 "조사 통한 공익이 사익 제한보다 커"


통계청은 "사회와 경제의 변화에 부응해 그 변화상을 보다 자세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항목을 선정한다"는 입장이다. 가령 마시는 물을 묻는 질문의 응답은 수자원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1인 가구 사유나 혼자 산 기간의 응답은 가구 분화 및 1인 가구 형성 사유, 기간 파악을 통해 가족 정책의 기초 자료를 제공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통계청은 "조사 항목은 정부나 연구소 등 조사 이용자들의 수요 조사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나온 것"이라며 "대부분의 조사 항목은 유엔에서 권고한 것들"이라고 밝혔다. 실제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배우자와 이혼, 사별했거나 별거 중인지 등 구체적인 혼인 상태와 결혼 상대가 이성인지 동성인지 등을 묻는다.

이 같은 논란은 직전 조사가 이뤄진 2015년에도 제기됐다. 2015년 11월에 한 시민이 통계청을 상대로 인구주택총조사가 개인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기도 했다.

2017년 헌법재판소는 "조사를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청구인의 사익 제한보다 훨씬 크고 중요하다"며 "조사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다"고 인구주택총조사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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