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부통령

입력
2020.11.09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저는 부통령직을 수행하는 첫 여성이겠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입니다.”

7일 연단에 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넘쳐 흘렀다. 여성ㆍ흑인ㆍ아시아계라는 3중 차별의 벽을 뚫고 미국 여성으로서는 최고위 선출직 공무원에 오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이 역대 최고령(78세)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해리스 당선인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 가능성도 있다.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 유고(有故)시 직을 1순위로 승계하는 고위 공직자이지만, 불분명한 역할 때문에 오랫동안 논란이 돼 왔다. 훌륭한 정치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고령의 아픈 무명인사들이 부통령직을 맡는 경우도 많았다. 정책 결정 과정에는 개입하지 못한 채 대통령이 정책을 발표할 때 옆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게 고작하는 일이라며 ‘미소 짓는 꼭두각시’라는 조롱까지 받기도 했다. 잊을 만하면 부통령 폐지론이 나왔던 까닭이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잠재된 대통령으로서 부통령의 위상은 점차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바이든 당선인까지 1950년대 이후 모두 6명의 부통령 출신이 대통령 유고 또는 임기 후 대권에 도전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부통령이 공개적으로 대통령의 의사에 반하는 활동을 하는 경우도 흔해지고 있다. 험프리 부통령은 베트남전 문제로 존슨 대통령과 대립하며 북베트남 폭격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고, 고어 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의 섹스스캔들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바이든 당선인도 부통령 시절 동성결혼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과 달리 지지하는 쪽이라고 공표하기도 했다.

□56세의 활력 넘치는 정치인인 해리스 당선인은 바이든 당선인의 고령 이미지를 보완해 줄 적격자로 꼽히고 있다. 바이든 당선인은 대통령직을 수행할 때 해리스 당선인과 중요한 정책 결정을 함께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등 돈독한 파트너십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6월 민주당 대선 경선 TV토론에서 해리스 당선인이 바이든 당선인의 인종차별 경력을 꼬집었듯 언제라도 제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높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해리슨 당선인의 행보를 주시하는 이유다.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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