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학회장 “한국판 뉴딜, 재정에 치중하기보다는 민간 회복 유도해야”

입력
2020.11.09 16:25
국회예산정책처 '예산춘추' 기고

한국경제학회장을 맡고 있는 이인호 서울대 교수가 재정 위주의 한국판 뉴딜 사업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재정 지출만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끌어내는 것은 불가능한 만큼 규제 정비 등 민간 성장 잠재력을 깨우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9일 학계에 따르면 이 교수는 최근 국회 예산정책처가 발간한 예산춘추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고문을 게재했다.

이 교수는 우선 “위기 때는 경제 주체들이 평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변화를 수용하기 쉽기 때문에 중장기적 구조조정에는 좋은 기회”라며 “정부가 제시한 한국판 뉴딜은 우리나라의 중장기적 성장 잠재력 회복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한국판 뉴딜은 한국 경제의 위상을 생각할 때 상당히 적절한 정책 구상”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다만 제시된 계획안이 지나치게 재정 지원에 치중하고 있는 점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올해부터 2025년까지 총 160조원의 사업 중 71.3%(114조1,000억원)를 국비로 쏟아붓고, 이를 통해 190만1,000개의 일자리를 기대한다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대공황 이후 시행된 미국의 뉴딜은 재정 지출보다 규제 정비가 중요한 부분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현 정부는 출범 이후 지속적으로 팽창적 재정을 운용했는데 여기에 더해 재정 지원을 골자로 주요 계획을 제시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개인의 부채처럼 국가 재정 역시 일단 건전성이 훼손되면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뉴딜을 추진하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고용이 줄어들지는 않을까’하는 불안감이다. 자동화를 통한 생산 혁신은 물론 의료, 법률 등 전문 분야에서도 인공지능(AI)이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 교수는 “디지털 뉴딜이 고용 증가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의 노동력이 신산업으로 원활히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의 역할은 사람들이 새로운 고용 기회를 찾는 과정에서 소비를 유지하면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술 혁신과 관련해서는 “정부에 의한 의도적이고 방향성 있는 지원은 자원 배분을 오히려 왜곡시킬 가능성이 크다”며 “실제 혁신은 민간이 주도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린 뉴딜은 탄소배출 억제와 경제적 후생 개선이라는 두 가지 목표가 상충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에 기존 산업과 신 산업과의 갈등, 화력발전 감축에 따른 전력 생산 문제 등이 예상된다. 이 교수는 "최선책의 달성이 불가능하면 차선책을 선택하는 유연성을 가져야 한다"며 "사용 불가능한 수단을 고집하기 보다는 그 목적을 가능한 만큼이라도 달성하게끔 만들어주는 수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 = 박세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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