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움’이라 불리는 의료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고통받다 사망한 서울의료원 고 서지윤 간호사가 산업재해 피해자로 인정받았다. 지난해 고 박선욱 서울아산병원 간호사에 이어 태움에 의한 사망이 다시 한 번 산재로 확정된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서 간호사의 유족이 제출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 사건에 대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산재에 해당하는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고 9일 밝혔다.
공단은 “판정위원회가 유족과 대리인의 진술을 듣고 자료를 검토한 결과 서 씨가 업무 및 직장 내 상황과 관련돼 정신적 고통을 겪었음이 인정된다”며 “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됨에 따라 정상적인 인식 능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사망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서울의료원 5년차 간호사였던 서씨(당시 29세)는 부서이동 후 12일만인 지난해 1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가 유서에 ‘조문도 우리 병원 사람들은 안 왔으면 좋겠다’고 쓰면서 태움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서울의료원 노조와 시민단체가 모인 ‘서울의료원 간호사 사망사건 진상대책위원회’가 5개월간 진상조사를 했고, 서씨 사망 원인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결론 내렸다.
대책위에 따르면 고인의 2018년 연간 총 근무일은 217일로 동기 19명의 평균(212일)보다 많았고, 야간 근무일 역시 83일로 동기들(76일)보다 많았다. 이에 서씨는 잦은 근무표 변경과 불합리한 근무일정, 야간근무 문제로 부서이동이나 사직을 호소해왔다. 고인은 2018년 12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기피부서인 간호행정부서로 이동했지만, 새 부서에는 그가 쓸 책상과 컴퓨터 조차 지급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대책위는 일부 직원이 서씨에게 모욕적 언행을 했다는 정황도 파악했다.
공단의 결정에 대해 대책위는 ‘상식적인 결정’이라며 환영했다. 대책위는 “이번 결정에서 드러났듯이 서 간호사의 죽음은 개인적인 게 아니라 서울의료원 관리자들에 의한 직장 내 괴롭힘이자 평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에 의한 구조적 죽음”이라며 “서울의료원은 고인의 유족에게 사과하고 간호사 야간전담제 재검토 등 노동조건 개선을 위한 권고를 이행하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개정법 시행으로 직장내 괴롭힘에 의한 정신질환이 산재로 인정받게 된 뒤 이에 대한 권리구제도 늘어나고 있다. 공단에 따르면 지난 2014년 137건에 불과했던 관련 산재신청은 지난해 331건으로 증가했다. 산재인정 또한 2014년 47건에 그쳤지만 지난해는 231건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