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라임 펀드의 환매중단에 이어 올해 6월 옵티머스 펀드의 환매중단 사태가 이어지며, 400조원대로 성장한 국내 사모펀드 시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런 상황을 방치한 금융사와 금융 감독 체제에 대한 신뢰 역시 땅에 떨어졌다. 복잡한 구조와 수많은 관련자 때문에 본질을 파악하기 힘든 이번 사태를 금융전문가인 주진형(61) 열린민주당 최고위원을 만나 진단했다. 주 최고위원은 미국 존스홉킨스대 경제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경제학자이자, 여러 금융회사를 거쳐 한화투자증권 사장을 지냈다.
_라임과 옵티머스는 사태는 사모펀드 투자자 문턱을 대폭 낮춘 2015년 규제 완화가 발화점이다. 당시 투자 하한액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낮추며, 사실상 일반인들에게 사모펀드 투자를 허용했다. 금융당국은 왜 이런 결정을 했나.
“금융위원회의 모순적 성격에서 비롯된다. 금융감독 정책의 기초는 감독 체제를 잘 갖추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가 금융감독위원회를 재경부 금융정책국과 합쳐 금융위원회로 바꾸면서 여기에 ‘자본시장 육성’이란 임무도 맡겼다. 그들 눈에 자본시장을 육성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규제 완화’다. 금융이 과연 다른 산업처럼 ‘육성’해야 하는지도 동의하기 힘든데, 심지어 금융 감독 제도를 만들고 관리 감독해야 할 기관에 금융산업을 육성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사모펀드 관련 규제 완화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우리 금융위에 해당하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펀드나 자본시장을 ‘육성’하려 하지 않는다.”
_우리나라 금융감독 체제가 근본적으로 잘못 짜여 있다는 것인가.
“기업지배 구조와 회계를 투명하게 하고, 투자자 신뢰를 얻기 위한 제도 개선과 금융 감독을 충실히 수행하면 자연스레 자본시장이 성장하고 선진화된다. 그런 기본 임무를 등한시한 채 산업 성장에만 관심을 쏟는 것은 나무가 빨리 자라지 않는다고 땅에서 뽑아 올리려는 짓과 같다. 현 정부도 이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정권 초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공정거래위원장이 아니라 금융위원장을 맡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지금 우리 금융산업은 가속페달만 있고 브레이크는 부실한 자동차 같다.”
_펀드 투자 구조를 운용사(라임)와 투자사(증권사) 판매사(은행 증권사)로 나눈 것은 상호 감시ㆍ견제 장치였는데, 오히려 책임을 미루는 장치가 돼 버렸다.
“금융회사 내 부정을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법령과 규정을 어긴 행동이 발견되었을 때 처벌을 엄격하고 강력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 역사상 최대 폰지 사기극을 벌인 버나드 메이도프의 경우 150년 형을 받았다. 미국은 금융 관련 부정에 대한 처벌은 부정행위로 얻은 이익보다 훨씬 큰 벌금이나 장기 징역형을 선고하고, 보다 가벼운 부정의 경우에도 다시는 금융업에 종사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 특유의 온정주의 때문에 조직 내에서 부정이 발견된 경우 사표를 받는 선에서 덮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그만둔 사람이 얼마 안 돼 다른 금융사로 재취업하기도 한다. 심각한 부정행위에 대한 벌금이나 형사 처벌도 가벼운 편이다. 이런 환경에서 당장 실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펀드 상품에 대해 구조적 문제점이나 운용 상황을 꼼꼼히 따져보려는 금융사 직원이 얼마나 되겠는가.”
_라임의 경우 펀드 상품 구조부터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총수익스와프(TRS)도 라임 투자 규모를 부풀려 피해액을 키우는 요인이 됐다.
“펀드 판매사와 운용사 간 불공정 관행이 만연해 있다. 라임 사태를 처음 접하고 ‘상품 설계부터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임은 벤처회사나 사모 채권 등 장기상품에 투자하면서 펀드 만기를 6개월로 정했다. 투자 수익이 계속 늘어나지 않는 한 언제라도 유동성 위기에 휘말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펀드가 만들어진 것은 판매사인 은행과 대형 증권사가 선취수수료(원금 투자가 이뤄지기 전에 펀드 판매액에서 미리 떼는 수수료)를 더 많이 받기 위해 짧은 만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규모가 큰 판매사와 운용사 간의 불공정 관행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TRS는 여러 나라에서 흔히 사용하는 파생상품 계약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펀드 운용사에 자본을 제공하는 대신 시중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고정적으로 받는 증권사에 유리한 계약으로 보이지만 제공한 자금을 몽땅 날릴 위험이 있어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라임 사태 당시 우리 증권사들이 과연 그런 위험성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회의적이다. 게다가 라임의 자금 사정에 이상 징후를 감지하자 금감원이 조치에 들어가기 전에 증권사들이 TRS 투자금을 재빠르게 회수했다. 라임으로 손해를 입은 일반 투자자들이 분노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_소액투자자를 모으고, 공모 투자의 규제를 피하기 위한 ‘펀드 쪼개기’도 문제다.
“펀드 쪼개기는 그토록 오래 허용된 것부터 이해하기 힘들다. 펀드 쪼개기는 2017년 6월 미래에셋대우가 베트남 ‘랜드마크72’ 빌딩의 매출채권 3,000억원을 현금화하기 위해 특수목적회사(SPC) 15개로 쪼갠 후 각각의 SPC에 투자자를 49명 이하로 모집해 자산유동화증권(ABS)을 개인 573명에게 팔았을 때 문제가 됐다. 금감원은 이를 공모펀드 규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 사모펀드’라고 과징금을 부과했고, 재발 방지를 위한 일명 ‘미래에셋방지법’이 2018년 5월부터 시행됐다. 그런데 이를 모를 리 없는 금감원, 증권사, 은행 중 누구도 라임의 펀드 쪼개기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 역시 수익을 올려주는 라임 펀드 문제점을 굳이 들춰내지 않으려는 증권사 은행 담당 직원의 실적 압박과 경영진의 안이함이 원인이 됐을 것이다.
이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금융상품 판매 은행과 증권사에 대한 책임을 강하게 묻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감독 당국이나 재판부 모두 금융관련 사건에 대한 처벌에 소극적이다. 증권사 사장으로 있을 때 제일 답답했던 게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규정을 성실히 지키도록 직원을 설득할 수단이 없다는 것이었다. 남들은 반칙해도 무사한데 왜 우리만 규정을 지켜야 하느냐는 것이다. 부정은 물론 관리 감시 잘못으로 금융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경우 엄한 처벌이 이뤄진다면, 경영진이 일일이 간섭하지 않아도 스스로 규정을 지킬 것이다.”
_옵티머스는 ‘공공기관 매출채권’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채권에 투자하겠다는 단순한 사기극이었는데, 어떻게 감독 당국과 증권사 은행들이 속았을까.
“증권사에 오래 몸담았던 나도 처음 듣는 채권이었다. 그래서 옵티머스 사태가 터진 후 여러 곳에 물어봤다. 옵티머스 펀드를 가장 많이 판매한 NH증권의 지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처음 들어봤고, 없다고 말했다. 옵티머스에 투자한 다른 지인도 ‘이런 상품도 있나’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냥 넘어갔다고 말했다. 이후 투자규모가 커지는 게 불안해 ‘매출채권 채무자 확약서’ 확인을 옵티머스에 요구했는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시간을 미루는 걸보고 투자금을 회수해 피해를 모면했다고 했다. 옵티머스가 수많은 금융 상품이 쏟아지는 현실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처럼 보인다. NH증권도 이런 것들을 확인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옵티머스가 위조한 서류에 속았다고 한다.”
_ 이번 사태를 보면 펀드들끼리 자전거래를 통해 펀드 규모를 부풀리는 초보적 회계 부정이 벌어졌는데, 이를 감시하지 못한 것은 금감원 잘못 아닌가.
“금감원은 사모펀드 회계를 감시 감독할 의무가 없다. 그게 사모펀드를 만드는 이유이다. 펀드 운영사가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고 위험 상품에 투자하는 펀드이니 그 위험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 투자자만 모집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규제가 바로 일정 규모 이상 자산가로 제한하고 투자자를 49인 이하로만 모집하게 하는 것인데 정부는 이걸 1억으로 풀어주고 일반은행에서도 팔게 하고 쪼개기도 미리 적발하지 못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적합성 원칙’, 즉 고위험 상품을 팔 때는 그 상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할 만한 고객인지 금융사가 판단하고, 잘못이 드러날 경우 책임을 묻는 제도가 명목상으로만 있고 실효성이 적다. 외국에서는 이를 근거로 손해배상 청구하면 100% 손해를 배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 공모펀드도 불완전 판매 사고가 빈번한 상황에서 고위험 고수익을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 상품을 은행 창구에서 일반 고객에게 팔도록 허용한 것은 정신 나간 결정이다.”
_옵티머스 라임 모두 금감원의 적기시정조치(금융기관의 부실화 위험이 감지되면 시정을 요구하는 조치)가 유예되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있다. 또 그 과정에서 로비 의혹도 나온다.
“로비 의혹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금융위원회의 규제 원칙의 모순성이 더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적기시정조치’란 그 말 그대로 적기에, 즉 피해가 본격적으로 발생하기 전에 미리 조치를 내려야 금융소비자의 피해를 막는다. 하지만 과거, 은행이든 카드사든 적기시정조치를 적기에 내린 적이 별로 없다. 유예하는 것이 관행이다. 금융을 산업으로 보고 정부는 진흥해야 한다는 관념이 그 밑에 깔려 있다. 금융위가 규제를 완화해 사모펀드를 ‘진흥’했기 때문에, 그 결실인 라임과 옵티머스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스스로 먼저 나서서 조치하지 못한 것 같다.”
_어떻게 바꿔야 하나.
“우선 사모펀드와 관련해서는 투자 하한액을 빨리 5억원 이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또 법까지 제정해 금지한 ‘쪼개 팔기’가 오랫동안 허용되고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히 밝혀야 할 것이다. 금융 감독체제와 관련해서는 현재의 금융위원회는 해체하고, 산업 진흥 부분은 분리해 기획재정부로 떼어줘야 한다. 금융감독은 금융 소비자 보호와 건전성 규제에 집중해야 한다. 현장의 금융감독 인력도 확충해야 한다. 인원 확충 없이 금융감독의 질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영오 논설위원
정리=변한나 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