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모피 옷을 싫어하게된 이유

입력
2020.11.08 14:00
21면

편집자주

클래식 거장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정명훈이 선택한 신예 피아니스트 임주희가 격주 월요일자로 '한국일보'에 음악 일기를 게재합니다.



나는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어느덧 세 마리가 됐다. 첫째는 분리불안을 겪는 강아지라 집에 사람이 없으면 하루 종일 짖어댄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라 몇 집을 전전긍긍하다 결국 연습실에 있는 시간이 많은 나와 주로 시간을 보낸다.

둘째는 태어난 지 1년이 다 되어가도록 케이지에 갇혀 친구들이 분양되어 나가는 것을 쳐다만 보던 녀석이다. 케이지가 답답해 보일만큼 커져서야 우리 집에 왔다. 온지 3년이 지났건만 1년 동안 케이지 안에 갇혔던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도 홀로 계단을 못 내려간다.

셋째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귀에 염증이 생겼다. 항생제를 달고 살다시피 했는데, 그 때문에 분양이 안 될지 모른다는 말에 걱정이 돼서 집으로 데려온 녀석이다. 이 아이들 덕분에 혼자 하는 연습이 전혀 외롭지 않았다. 내가 그들에게 사랑을 준 것 같지만, 오히려 내가 그 아이들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어릴 때 유독 동물을 좋아해서인지, 모피 만지는 것도 좋아했다. 모피를 쓰다듬으면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촉감이, 마치 동물을 만지는 것 같아서였다.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초등학생 때 대량으로 모피를 만들기 위해 산 채로 여우의 가죽을 벗기는 장면을 보게 되면서 큰 충격에 빠졌다. 가죽이 벗겨진 채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여우의 눈을, 그리고 그 눈에 맺힌 눈물을 봤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여우를 떠올리면 그렇게까지 해서 만든 모피를 입어야하나 싶었다. 그 뒤 모피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그 사실을 알기 전에는 모피를 만지기만해도 행복했었던 나인데 이제는 스치기만 해도 그 동물의 고통이 전해지는 것 같아 소스라치게 놀라곤 한다. 내가 너무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모피를 좋아하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해야만 한다고 하는 생각은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극도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을 자랑하는 모피보다, 사람이 좋다고 길에서 뒹굴다가 달려와 재롱을 부리는 길강아지의 헝클어진 털을 어루만지는 것이 더 좋다.

내 연주도 그랬으면 하고 피아노를 친다. 너무 깨끗하고 세련된 나머지 반듯한 자세로 숨소리도 안 내고 들어야하는 음악이 아니라 그냥 차 한 잔을 옆에 두고 그리운 사람을 생각하며 생각에 잠길 수 있게 만드는 음악 말이다. 그럴 때 내 음악은 조연이다. 주연은 그리워하는 그 누군가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제일 빛나는 상은 남우, 여우주연상이겠지만 요즘은 남우, 여우조연상에 눈길이 더 간다. 그들이 없었다면 주연상은 빛을 발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음악은 주연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의 인생에 함께 할 멋진 조연이 될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할 생각이다. 발상의 전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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