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세 특별한 편의점 직원 "10년 만의 재취업, 식구들에 쇠고기 쐈어요"

입력
2020.11.0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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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청 서울시내 첫 어르신 편의점 '착한상회' 운영
'함께그린카페' 등 13개 사업 노인 일자리 500개 창출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 사는 이영숙(64)씨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최근 취업에 성공했다. 대형마트 아동복 판매점에서 6년간 일하다 그만둔 지 꼭 10년만이다. 그의 일터는 인근 가산동에 있는 편의점 ‘착한상회’. 그는 지난 9월부터 매주 수ㆍ토요일 낮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근무하고 있다. 이씨는 9월말 첫 월급 51만여원을 받아 추석연휴 가족들에게 쇠고기로 한 턱 쏘는, 소소한 행복을 맛보기도 했다. 이씨는 “사업하는 남편 뒷바라지와 집안 살림하면서 식당이나 공장에서 일해보려 해도 나이 때문에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며 “일이 정말 신나고, 재미있어 힘닿는 데까지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의 취업이 가능했던 건 ‘착한상회’ 운영을 맡은 ‘금천시니어클럽’이 만 60세 이상 어르신만 고용했기 때문이다. 금천시니어클럽은 노인일자리 전담기관이다. 구는 민간기업과 연계하는 이 사업을 위해 지난 8월 GS리테일과 가맹계약(4년)을 맺고 위탁 운영하고 있다. 가맹비와 보증금은 편의점 본사 사회공헌사업으로 면제 받았다.

덕분에 지난 9월 문을 연 ‘착한상회’에는 이씨를 포함해 현재 8명의 어르신이 근무 중이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64세, 최고령은 무려 75세다. 이들은 개점 전 2주 동안 안전ㆍ서비스 교육과 실습을 마친 뒤 월요일~토요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까지 3교대로 투입돼 손님 응대, 계산, 진열, 정리 등을 깔끔하게 해내고 있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어르신만 고용한 편의점은 서울 25개 자치구 중 금천구가 처음이고, 2호점 개설도 준비 중”이라며 “단순한 공공 일자리가 아니라 어르신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누구보다 의욕이 넘치는 이들은 성실한 업무로 평가도 좋다. ‘착한상회’ 점포 관리를 맡고 있는 GS25 관계자는 “청소를 대충하는 일반 아르바이트생들과 달리 어르신들은 꼼꼼하게 청소하고 인사성이나 서비스 마인드도 좋은 편이라 단골 손님이 많다”며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던 포스(POS) 이용 계산, 신선도 관리 등도 이제는 능숙하다”고 말했다.


금천구는 ‘착한상회’를 비롯해 각종 노인일자리 사업 13개를 운영하며 관내 어르신 500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어르신만 고용하는 ‘함께그린카페’는 현재 5호점까지 개점해 60명이 근무 중이다. 카페에서 근무하던 한 어르신은 카페 경력을 디딤돌 삼아 경비업 정규직으로 재취업하기도 했다.

금천구는 또 지난 9월 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금천일자리주식회사’도 설립했다.

이처럼 금천구가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는 말을 앞장서서 실천하고 있는 데는 관내 중국 동포나 새터민 등의 거주 비율이 높아 어르신들이 취업에 더 어려움을 겪어서다.

금천구시니어클럽 관계자는 “고용주들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은 이주민들을 고용하는 편이라 가뜩이나 취업이 어려운 어르신들은 더욱 설 자리가 없어 노인 일자리 창출에 적극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812만5,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5.7%를 차지하지만, 지난해 기준 이들의 고용율은 32.9%에 불과하다. 15세 이상 인구 전체 고용률(63.3%)의 절반 수준이다.

유성훈 금천구청장은 “금천시니어클럽과 금천일자리주식회사 두 기관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어르신들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박민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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