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길을 우리 몸에 빗댄다면 모세혈관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혈관 구조는 내피와 바닥판으로 이뤄진 만큼 단순하고, 두께도 얇다. 그렇기에 물질 교환이 원활히 이뤄진다. 골목길도 마찬가지다. 골목에 들어서면 외부의 경치가 사라지고, 공간의 개방성도 없어진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주름 잡힌, 사람들의 일상이 녹아 있는 좁다란 길에 몰입하게 된다. 때문에 골목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음이 시작되는 첫 번째 영역이라고 볼 수 있다.
골목길은 유기적이다. 얽히고설켜 다소 산만하지만 골목길은 사람들이 만든, 유연하고 자연스러운 공동생활 리듬을 품고 있다. 그래서 골목길은 곧게 뻗은 큰 길보다 민주적이며, 그 동네의 정서는 골목길 내부에서부터 만들어진다.
‘골목길 정원’은 이 같은 골목길의 성격을 살리면서 낙후된 공간으로 남아 있는 골목길을 되살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각 특색에 맞춰 다양한 정원을 조성하면서, 동시에 골목길 정원에 다양한 취향과 의미를 반영할 수 있어서다.
첫 번째, 골목길 정원은 ‘개인’의 취향을 반영한다. 주민이 직접 만든 골목길 정원은 각 집의 문패와 같이 자연에 대한 개인적 취향을 표출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주민들의 생각이 더해져 정원을 통한 색다른 골목길을 연출하기도 한다.
두 번째, 골목길 정원은 ‘자연’의 취향을 반영할 수 있다. 인위적으로 만든 골목길 정원은 자연스러움과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단순히 골목의 겉모습만 가꾼 화장(化粧)한 공간으로 보긴 어렵다. 소통이 활발해지는 등 골목길 정원은 원래 그곳에 자연스럽게 있었던 것처럼 일상에 스며들어 주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골목길 정원은 ‘집단’의 취향을 대변한다. 정원은 공동체의 원칙을 포용하게 하고, 동네 커뮤니티를 만드는 촉매역할을 한다. 공통의 관심을 가진 주민들이 모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동네의 이용 가능한 공간을 함께 정원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골목길 정원은 ‘돌봄과 가꿈’의 취향을 반영한다. 이것은 골목길 정원의 보이지 않는 역할이다. 정원을 돌보고 가꾸면서 동네 주민들은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느끼게 되고, 복잡한 도심 속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생활 속 지혜를 쌓아 갈 수 있다.
서울의 골목길이 점차 사라지는 요즘, 지난해 서울정원박람회 일환으로 조성된 서울 용산구 해방촌 골목길 정원에서 우리는 이러한 취향을 짧게나마 경험했다. 해방촌 골목길의 작은 정원 하나가 마을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이렇듯 골목길 가꾸기는 삶의 질을 높이고 도시 이미지를 개선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만나고 제일 먼저 변화를 느끼는 내 집 앞 골목길과 정원의 결합은 도시재생의 핵심 방법이 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