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보호 20년, 반려인 1500만명 시대 "비반려인 마음도 움직여야"

입력
2020.11.02 18:30
동물자유연대, 20주년 좌담회 개최
"감성호소에서 법·제도 바꾸는 방향"


반려인 1,500만명 시대. 이제는 동물보호, 동물복지라는 단어가 어색하지 않지만 국내에서 이른바 '동물권'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동물보호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한 지 이제 20년. 1999년 동물보호단체 동물자유연대가 동물보호활동의 첫 걸음을 뗐고, 2001년 동물보호단체로는 처음으로 서울에 사무실을 마련했다.

동물자유연대가 20주년을 맞아 동물보호활동의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동물보호활동 방향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초청 '20주년 좌담회'를 열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성동구 행당로 동물자유연대 본부에서 김현성 오보이 편집장, 배다해 방송인, 정이수 변호사, 정유희 페이퍼 편집장, 천명선 서울대 수의대 교수, 황윤 다큐멘터리 감독(가나다순) 등이 모여 동물권과 채식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체계적으로 바뀌었지만 반려인-비반려인 갈등도


천명선 교수를 비롯한 참석자들의 대체적인 평가는 동물보호활동이 20년 전에 비해 체계적이 됐다는 것이다. 황윤 감독은 "감성에만 호소하던 캠페인에서 법과 제도를 바꾸는 쪽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동물보호활동에 대한 쓴소리도 나왔다. 김현성 편집장은 "동물보호단체들 간에도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며 "내부의 갈등은 동물보호 활동가들을 바라보는 외부인들의 비웃음을 자아낼 뿐이다"라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또 "반려인과 비반려인, 채식인과 비채식인의 갈등이 더 커지고 있다"며 이러한 간극을 줄이고, 비반려인과 비채식인을 설득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제돌이' 방류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은 것은 2013년 서울대공원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의 방류다. 제돌이를 시작으로 총 7마리의 남방큰돌고래가 바다로 돌아갔다. 돌고래 방류하는데 동물자유연대의 역할은 컸다. 퍼시픽랜드의 남방큰돌고래 몰수를 위한 시민운동을 벌였고, 돌고래들의 야생적응 훈련을 도왔다.

동물자유연대의 법률지원센터에 참여하고 있는 정이수 변호사는 제돌이를 비롯 퍼시픽랜드에서 공연하던 춘삼이, 삼팔이의 경우 불법 포획된 게 밝혀진 다음 몰수형이 내려진 데 주목했다. 정 변호사는 "사실 몰수한 다음 관리문제 등이 따르기 때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제주지법에서 몰수 판결을 내렸다"며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일로, 수족관 행태에 대한 법적 규제 기회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천 교수와 정유희 편집장은 "동물 없는 동물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았다. 황 감독은 "야생동물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 사건"이라며 "한 개인, 단체의 힘이 아니라 정치·언론·시민·동물단체가 이뤄낸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배다해씨는 "이전에는 수족관 돌고래가 불쌍해도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어쩔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제돌이 방류를 계기로 엄마들의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고 말했다.

채식 선택권 늘고 있지만 비채식인 반감 줄여야


동물보호활동과 따로 떼 생각할 수 없는 채식 이슈도 거론됐다. 참석자들은 일부 교육청에서 채식 선택권을 도입하고 군대에도 채식을 원하는 사병에게 채식 메뉴를 제공하겠다는 국방부의 결정까지 나왔지만 여전히 채식을 권장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큰 것도 사실이라는 데 공감했다.

황 감독은 "채식인구가 늘어나고 있지만 공장식 축산도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정부도 공장식 축산보다 대체육 산업 지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급식의 경우 각 교육청이 아니라 교육부가 나서 체계적으로 매뉴얼을 만들면 효율적일 것"이라며 "군대 내에도 채식 선택권이 도입됐지만 소수에 대한 차별적 시선 등의 문제도 면밀히 살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 편집장은 "먹는 행위로 비난받는 건 기분 나쁜 일"이라며 "(육식을 줄이고 채식을 하도록)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여전히 방송에서 우유를 마셔라, 달걀을 먹어라 캠페인을 하고 있다"며 "언론에서 육식 캠페인이라도 줄이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동물보호법이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정 변호사는 "1999년 동물보호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26번 정도 개정됐는데 2005년 이후가 22번"이라며 "동물보호법이 강화되는 추세는 맞지만 법적으로 동물이 물건으로 돼 있는 부분은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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