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 '롤러코스터' 인생 경험 '화합'을 말하다...바이든 당선인은 누구

입력
2020.11.08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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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더듬증 불구, 30세 전에 최연소 상원의원 
사고로 첫 아내·딸 잃고 장남은 뇌종양 사망
비극적 인생사 통해 성숙한 '공감의 지도자'

'미국의 최고 치유자(healer in chief)를 지향한다.'

미 CNN방송은 6월 민주당 대선후보로 한창 유세 중이던 조 바이든을 이렇게 묘사했다. 장애, 상처(喪妻), 참척 등 인생살이가 누구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그에게 바치는 헌사다. 좌절과 역경을 치유와 공감으로 승화시킨 그가 마침내 꿈을 이뤘다.

11·3 대선 개표 나흘 만인 7일(현지시간) 미국 46대 대통령, 역대 최고령 당선인에 오른 바이든의 삶은 파란만장 그 자체다. 이른바 '흙수저' 출신에 세상이 장애라 부르는 증상까지 겪었다. 최연소 상원의원 당선 직후엔 아내와 딸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아들마저 먼저 떠나보냈다. 반세기 공직생활을 토대로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갔지만 잦은 말실수와 카리스마 부재로 주춤했다. 영광과 좌절, 성공과 실패, 희열과 비극이 어우러진 삶의 굴곡이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바이든을 만들었다. '공감과 치유', 미국이 바이든에게 바라는 세상이자 일궈나갈 가치다.


최연소 상원의원 '조 임페디멘타' 그리고 비극

바이든 당선인은 1942년 11월 20일 펜실베이니아주(州) 스크랜턴에서 조지프 바이든 시니어의 3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일랜드계 가톨릭 신자로, 잇따라 사업에 실패한 부친이 중고차 판매상을 시작하면서 10세 때 델라웨어주 윌밍턴으로 이주했다.

어린 시절 말더듬증이 심했던 바이든은 자서전 '조 바이든, 지켜야 할 약속'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별명을 '조 임페디멘타'라고 소개하고 있다. 임페디멘타는 장애를 뜻하는 라틴어다. 각고의 노력으로 그는 델라웨어대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이어 첫 번째 아내가 된 닐리아와 함께 하기 위해 시라큐스대 로스쿨에 진학했다. 학위를 마친 후 델라웨어로 돌아온 바이든은 1969년 변호사가 됐다.

바이든은 1972년 연방 상원의원 당선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만 30세 생일을 몇 주 앞두고 델라웨어 현역 의원이자 공화당 거물인 케이럽 보그스를 1%포인트 차이로 누른 것이다. 그러나 극적인 승리 한 달 만에 부인 닐리아와 13개월 된 딸 나오미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함께 사고를 당한 아들 보와 헌터도 부상을 입었다. 절망에 빠져 상원의원을 포기하려 했던 바이든은 민주당 지도부의 만류로 이듬해인 1973년 두 아들의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임기를 시작했다. 두 아들의 양육을 위해 델라웨어 자택에서 워싱턴까지 90분 이상 암트랙 기차로 출퇴근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그는 내리 6선에 성공하며 36년간 민주당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2009~2017년) 재임 8년간 부통령으로 재직했다. 아픔도 끊이지 않았다. 1988년엔 뇌동맥류 파열로 자신이 큰 수술을 받았다. 2015년엔 장남인 보 바이든 당시 델라웨어주 법무장관이 뇌종양으로 사망했다. 정치경력은 탄탄대로였지만 가족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친근한 이미지를 잃지 않고 치유자 이미지를 더한 그의 삶의 궤적은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됐다.


미래 장모에게 "내 꿈은 대통령"... 삼수 끝에 달성

바이든이 언제부터 대통령을 목표로 삼았는지 알려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첫 아내인 인 닐리아를 처음 만난 대학교 3학년 때 닐리아의 어머니가 바이든에게 물었다. "자네는 무얼로 생계를 꾸릴 계획인가." 대학생 바이든의 대답은 이랬다. "미국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바이든은 세 번 도전 끝에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최연소로 경선에 나선 1988년엔 연설 표절 시비로 중도 하차했다. 2008년에는 오바마 돌풍에 밀려 중도에 사퇴했다. 부통령 재임 시절 오바마 대통령을 이을 가장 강력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감으로 거론됐으나 아들 보를 떠나보낸 이듬해 열린 2016년 대선엔 아예 출마하지 않았다.

바이든은 착실히 꿈을 위한 준비를 했다. 36년 의정 기간 법사위원회와 외교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진보와 보수 양쪽에서 모두 공격을 받는 실용적 중도를 유지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념에 집착하지 않는 그의 성향 덕분에 대선 후보가 됐다는 게 중론이다.

그의 약점이 부각되기도 한다. 가끔 튀어나오는 말실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발목을 잡기도 했다. 예컨대 자신을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상원의원 선거에 나서고 있다고 소개하거나, 부인과 동생을 순간적으로 헷갈리기도 했다. 카리스마가 부족하다는 약점은 오히려 친근하고 다정하다는 이미지를 구축해 장점으로 꼽히기도 한다.

바이든 평전을 쓴 에번 오스노스 뉴요커 기자는 "바이든의 특별한 카리스마는 트럼프의 군중심리를 자극하는 스펙트럼의 반대편에 있다"라며 "그것은 바이든 자신의 실수, 끈기, 고통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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