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 넘게 진행 중인 반(反)정부 시위에도 정권이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태국사회가 갈수록 분열되고 있다. 시위대는 불가침 영역이던 왕실 공주를 저격하는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다양한 투쟁 방식을 동원하고 있다. 반면 왕당파는 애국심을 문제 삼아 여중생을 때린 중년 여성을 후원하는 방식으로 왕실 수호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30일 현지 온라인매체 까오솟 등에 따르면 시위대는 전날 방콕 중심가인 실롬역 인근에서 시리반나바리 나리라타나 공주를 비판하는 ‘국민 런웨이’ 행사를 진행했다. 최근 태국 국제무역진흥부가 공주 개인 소유인 동명의 패션업체에 정부 예산 1,300만밧(4억7,000만원)을 ‘해외진출 지원비’ 명목으로 지급한 것에 대한 분노의 표시다. 시위대는 최대 15년형이 가능한 왕실모독죄 적용 가능성을 감안해 직접적인 구호를 외치진 않았다. 다만 공주의 회사가 이날 참가한 프랑스 플레어 런웨이 쇼를 빗대 레드카펫을 거리에 깔고 일반 시민들이 그 위를 모델처럼 걸었다. 각종 분장을 한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반정부 시위의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 포즈를 취했다.
시위가 여러 형태로 진화하자 왕당파도 강한 결속과 집단행동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시위대와 달리 구심점이 불분명하던 이들은 28일 방콕 아유타야 기차역 인근에서 “애국가가 나오는 시간에 기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중생의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은 중년여성 A씨가 기소되자 후원계좌를 만들면서 결집했다. 100바트 이하 소액 후원만 받기로 했음에도 계좌에는 하루 만에 태국인 평균 월급에 해당하는 1만8200밧(65만원)이 모였다. 특히 왕당파는 A씨가 경찰에 “생리통 때문에 여중생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단지 나는 우리가 애국가를 지지해야 한다는 점을 배우며 자랐을 뿐”이라고 진술한 부분을 부각하며 “좋은 의도에 경찰이 처분을 내린 것은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회 분열이 가속화하고 있지만 정권은 요지부동이다. 뿌라윳 짠오차 총리는 여전히 사퇴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군부가 장악한 의회가 추진 중인 화해위원회 구성도 난항을 겪고 있다. 야당이 참여 전제로 총리 퇴진과 왕실 개혁안 의제 추가를 들고 나오면서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이다. 시위대는 당분간 정권 지도부의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소규모 집회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