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 후보가 경쟁 중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선출이 막바지를 향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간 파워 게임이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이 큰 중국이 이웰라 후보 지지로 기운 것으로 알려진 데 반해 미국은 유명희 본부장 지원을 본격화하고 있다. "WTO가 중국 편향적"이란 불만을 드러내온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사무총장 선거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와 최종 결과가 주목된다.
28일 정부 당국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WTO 사무총장으로서 유명희 본부장의 능력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그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 이와 관련해 미 국무부는 전세계 각국 공관에 주재국 정부가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지를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27일(현지시간) "(국무부의 지시에는) 주재국 정부가 어느 후보를 지지하는지를 파악하고, 결정된 바 없다면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부드럽게 권유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면서 "이는 미국이 유본부장을 지지한다는 가장 명확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WTO 회원국으로서의 단순한 지지를 넘어 한국에 대한 '서포터' 역할까지 자처한 셈이다.
미국의 이 같은 움직임은 WTO 내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는 것이란게 외교가의 해석이다. 중국은 두 후보 지지 여부에 대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표명하지 않았으나 나이지리아 후보를 밀고 있다는 게 외교 당국의 분석이다. 이달 초만해도 홍콩매체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으로선 두 후보 모두 달갑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이 미국 시민권을 갖고 오랫 동안 워싱턴에 활동한 오콘조 이웰라 후보의 친미 성향을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유 본부장이 당선되면 같은 동아시아계라는 점에서 WTO 사무차장 등을 노리는 중국의 계획이 차질을 빚는 것도 우려한다는 것이다. 양측을 저울질하던 중국은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해 나이지리아 지지로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관측된다. 오콘조 이웰라 후보가 선출될 경우 WTO 내 고위직을 중국에게 준다는 물밑 교감이 형성된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WTO 선거전 초반 관망세를 보이던 미국이 유 본부장 지지에 적극 나선 것은 이 같은 중국의 움직임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과의 무역 분쟁 와중에 WTO가 중국 손을 들어주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해왔던 미국이 중국의 WTO 고위직 진출을 막기 위해서라도 유 본부장 선출을 도와야 하는 입장이다.
WTO는 27일(현지시간) 164개국 회원국에 대한 후보 선호도 조사를 마쳤다.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으나 유 본부장이 이웰라 후보에 뒤쳐졌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하지만 WTO 사무총장 선출은 단순 표 계산이 아니라 전체 회원국의 합의를 통해 도출되기 때문에 박빙인 상황에선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국가의 비토 여부가 중요하다.
정부 내에선 미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미국이 오콘조 이엘라 후보에 대해 강력한 반대 의사를 피력하고 다른 회원국 설득 작업에 나서면 판세가 뒤집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WTO는 주요 회원국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늦어도 내달 7일까진 차기 사무총장 선출 작업을 끝낸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