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목말라 했다. 삼고초려는 기본이고 회사 전용기까지 띄웠다. 본인보다 더 많은 연봉도 약속했다. 지난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인재경영' 철학이다. "S급 인재 10명을 확보하면 회사 1개보다 낫다"며 "업무 절반 이상을 S급, A급 인재를 뽑는 데 할애하라"고 전한 이 회장의 주문은 아직까지 각 기업들 사이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오늘날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워낸 이 회장의 자양분이기도 했다.
이 회장의 타계와 함께 전매특허로 잘 알려진 '인재경영'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이 회장은 S급 인재의 경우엔 직접 인터뷰에 나설 만큼, 각별한 애착을 보였다.
외부에서 영입한 대표적 S급 인재로는 삼성전자 사장을 지낸 황창규 전 KT 회장과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현 스카이레이크 인베스트먼트 회장) 등이 꼽힌다. 이들은 반도체 불모지였던 한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런 유산은 이재용 부회장에게로도 이어졌다. 삼성리서치 소장(사장)으로 발탁된 인공지능(AI) 분야 권위자 세바스찬 승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은 2018년 3월 캐나다로 직접 찾아가 승 소장을 영입했다. 현재 그는 삼성전자에서 AI 반도체 개발을 책임지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파격적인 인재 양성 프로그램도 이 회장의 지시로 시작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아직도 삼성에서 유지되고 있는 지역전문가 제도다. 지역전문가로 선정되면 1년간 현업에서 배제돼 해외 각국으로 파견을 떠나 현지 문화와 언어를 익히고, 현지 인력들과의 네트워킹 형성에 전념한다.
1987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취임한 이 회장이 지역 전문가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했을 때만 해도 주위에선 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 회장의 거듭된 지시에 1989년 사장단 회의에서 마지못해 '5년간 500명을 양성하겠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21세기 환경을 감안한 숫자입니까? 2,000명을 양성하세요"라고 임원들을 다그친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해외에 다녀온 삼성 임직원만 5,000명이 훌쩍 넘었다. 그들이 남긴 수많은 보고서는 삼성의 현지 마케팅의 근간이 됐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전체 매출의 85%를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의 정점에 있는 자리에도 현장을 강조하면서 현실을 직시하는 자세는 오늘날 경영계에 귀감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회장은 언론 기고 칼럼에서 1987년 회장에 취임한 당시를 회상하며 "삼성 내부는 긴장감이 없고 '내가 제일이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조직 전체에 위기의식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했다"고 꼬집었다. 임직원들에게 수차례 위기의식을 강조해도 조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결국 1993년 6월 이 회장은 삼성의 핵심 임원 200여명에게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집결할 것을 명령했다. 이들은 68일간 유럽, 미국, 일본의 세계 일류 현장을 찾아 다녔다. 매일 밤 호텔방에 모여 새벽까지 뼈저린 반성을 했다.
이 회장의 현장 경영은 중요한 고비마다 빛을 발했다. 1993년 초 16메가 D램 양산 과정에서 8인치 웨이퍼(반도체 원판)를 투입한 것도 이 회장의 결단이었다. 당시 모든 반도체 회사는 6인치 웨이퍼를 썼다. 8인치 웨이퍼는 생산성은 높여 주지만 새로운 시도인 만큼 위험 부담도 컸다. 실패할 경우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됐다. 이 회장은 이때를 "세계 1위로 발돋움하려면 그때가 적기였다고 생각했고, 월반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술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하리라고 판단했다"라고 회상했다. 결국 삼성은 일본의 반도체 기업과의 D램 양산 경쟁에서 앞섰고, 그해 10월 메모리 분야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반면 이 회장이 남긴 숙제도 있다. 이 회장은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눈에 흙이 들어와도 노조는 안 된다'는 유훈을 지키며 80여년간 무노조 경영을 이어 왔다. 그 과정에서 삼성은 직원들의 노조 활동을 암암리에 방해했다. 아들인 이 부회장에게 회사를 승계하기 위해 벌인 온갖 탈·편법도 우리 경제를 병들게 했다. 이를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댄 것도 '정경유착'의 대표 사례로 꼽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에선 이 회장에 대한 평가에 긍정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없었으면 세계 일류 자리에 있는 삼성전자도 없었을 것"이라며 "그가 남긴 교훈은 아직도 우리 경영계에 유효한 자산"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