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 말기 권력자 차지철을 '해석'한 여러 인물평 키워드는 '열등감'이다. 가난한 집 서자로 태어나 유년기를 서럽게 보냈고, 육사 입시에서 낙방해 갑종 장교로 군역을 시작한 게 주요 근거다. 심리학은 열등감을 현실 도피나 추종 성향과 관련 짓지만, 과도한 공격성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일종의 보상(보복) 심리다. 그는 박정희 곁에서 기고만장했고, 특히 육사 출신 장성들에게 모질었다. 태권도와 합기도(각 5단) 검도(3단) 등 격투기에 심취한 것도, 미국 조지아주 '레인저 스쿨' 연수 시절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동료 교육생을 무참하게 폭행했다는 일화도 '열등감'의 이면으로 설명한다. 히틀러를 저렇게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들큼한 자기계발서들이 예사로 들이밀듯이, 몇 개의 키워드로 인간의 복잡한 면모를 연역하는 것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명료한 만큼 미심쩍고, 비현실적이고, 평면적이다. 만일 그가 선량한 위인이었다면 모든 열등감의 재료들은 그럴싸한 영웅 서사의 밑천이 됐을 것이다.
차지철은 대한민국 엘리트들이 서울 5대 명문고로 꼽았다는 용산고(나머지는 경기 경동 경복 서울고)를 졸업했지만 육사에 못 들어가서 '머리가 나쁜'게 됐다. 그가 수료한 레인저스쿨은 미국 최정예 장교 엘리트코스다. 일단 열등감의 노예란 낙인이 찍히면, 쿠데타 주역으로 만 30세에 국회의원이 돼 여러 최연소 상임위원장(35세 외무위, 39세 내무위)을 역임하며 4선 의원을 지내고, 40세에 장관급 경호실장이 된 사실도 사소한 게 된다.
물론 심한 열등감은 논리로 납득하기 힘든 비이성적, 병적 심리다. 자질이나 출세의 광채가 열등감을 부정할 수 있는 미더운 근거가 될 수도 없다. 마찬가지로 서자니까, 시험에 떨어졌으니까, 열등감의 노예라는 논리도 의심해야 한다. 광의의 모든 차별이 저런 편의적 일반화에서 출발한다.
그는 권력에 취한, 독재자의 수족이었다. 그가 1979년 10월 26일 독재자와 함께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