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대선 종반 승부처인 대통령 후보 TV 토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북한 핵문제를 두고 정면 충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관계 개선이 전쟁을 막았다"고 주장했지만, 바이든 후보는 김 위원장을 ‘폭력배(thug)’로 표현하며 비핵화 약속이 있어야만 그를 만나겠다고 했다. 두 후보는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처,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 이민ㆍ인종 문제 등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22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州) 내슈빌 벨몬트대에서 열린 2차이자 마지막 TV토론에서 두 후보는 1시간 30분 동안 한 치의 양보 없는 설전을 이어갔다. 지난달 29일 1차 토론이 막말 공방으로 일관해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과는 달랐다. 토론 막판 흥분으로 목소리가 높아지는 대목도 있었지만 두 후보는 자신의 주장을 유권자에게 호소하고 상대의 입장을 비판하는 식의 모범적 토론을 진행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두 후보는 특히 북한 문제에서 의견 대립을 보였다. 사회자인 NBC뉴스 크리스틴 웰커 기자는 ‘(최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선보인) 최대 규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개발 지속은 김 위원장이 보낸 친서를 배신한 것 아니냐’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질문했고 그는 곧바로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이어 “(취임 후) 북한과의 관계 개선으로 전쟁이 없었다. 전쟁이 일어났으면 수백만이 죽었을 것”이라고 설명하자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는 북한에 정당성을 부여해 줬고, 폭력배를 좋은 친구라고 얘기했다”고 공격했다.
사회자가 바이든 후보에게 ‘어떤 조건에서 김 위원장을 만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그는 “북한의 지도자가 북한의 핵 능력을 축소하겠다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북한의 비핵화 약속을 전제로 한 북미정상회담도 가능하다는 의미지만 실제 회담 추진 방침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 비판에 더 무게가 실린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와 김 위원장은) 좋은 관계다. 다른 나라 지도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는 게 좋은 것”이라고 하자 바이든 후보는 2차세계대전 당시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까지 언급하며 반격을 가했다. “히틀러가 남은 유럽을 침공하기 전까지 우리는 그와 좋은 관계였다”는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너무 유화적이었다는 비판이었다.
바이든 후보는 이어 “김 위원장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은 오바마가 비핵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김 위원장을 정당화하지 않을 것이고, 더 강한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했는데 그 일 때문에 김 위원장이 우리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오바마 행정부)은 엉망진창인 상태를 남겼다. 북한은 엉망이었다. 취임 후 3개월은 아주 위험한 시기(였는데 내가 전쟁을 막았다)”라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했다.
러시아, 이란의 미 대선 개입 의혹도 핵심 이슈였다. 미 국가정보국(DNI)은 전날 기자회견에서 두 나라가 미 유권자 정보를 해킹해 선거 개입 등에 악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바이든 후보는 “어떤 나라든, 그게 누구든, 미국 선거에 개입하고 미국의 주권을 건드리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중국까지 거론하며 “그들이 미국의 주권에 개입하고 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후보의 아들 헌터 바이든의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이 문제를 엮었다. 그는 바이든 후보 가족이 러시아에서 350만달러를 받았다고 몰아세웠고, 이 돈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미 뉴욕포스트가 제기한 헌터 바이든과 우크라이나 기업 간 부정 거래 의혹을 확산시키려 한 것이다. 또 바이든 후보를 ‘부패한 정치인’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이든 후보는 “나는 평생 다른 나라에서 한푼도 받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계좌 개설 문제를 언급하며 “미국보다 중국에서 세금을 50배나 낸다”고 공박했다.
국내 정책을 두고도 두 사람은 치열하게 맞섰다. 코로나19와 관련, 바이든 후보는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세가) 암울한 겨울로 들어가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계획이 없다”고 비판했다. 또 “(코로나19를) 통제하지 못한 것과 많은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 미국 대통령으로 남아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 모퉁이를 돌고 있다”며 코로나19 조기 해결 가능성을 반복했다. 코로나19에 걸리더라도 회복률이 99%라고 주장하고, 백신을 몇 주 내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가 말을 뒤집기도 했다.
오바마케어 공방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의학을 사회주의화하려고 한다”며 공격을 펼쳤다. 바이든 후보는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의료보험) 공공선택권을 준다는 게 사회주의자 계획이냐”고 반박했다. 이민 문제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행정부 때부터 이민 규제 정책이 실시됐다고 지적했고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반(反)이민정책이 부모와 아동의 생이별을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토론 후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자신이 이번 토론 승자라고 평가한 글을 잇따라 추천하며 기세를 올렸다. 2016년 대선 마지막 TV토론을 기점으로 지지층을 규합해 역전승을 이끌어냈던 경험을 재연하려는 전략도 세웠다. 그는 23일 최대 격전지 플로리다주에서 현장 유세를 벌인 뒤 다음날 주소지인 마러라고리조트 인근 웨스트팜비치에서 사전투표도 할 예정이다. 또 곧바로 노스캐롤라이나, 위스콘신, 오하이오 등 경합주를 하루 사이에 모두 찾는 강행군을 펼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토론이 대선 판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이미 유권자 4,900만명 이상이 사전투표를 마친 데다 부동층 역시 2016년 같은 기간의 절반 규모인 8%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지율에서 앞서가는 바이든 후보의 말 실수나 결정적 실책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분석도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의 코로나19 대처에 대한 변호는 설득력이 있었다”면서도 “3주 전 1차 토론 때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토론 결과로 판세를 뒤엎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이라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