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혜민의 B:TS] 나훈아 '테스 형!'-> 이날치 '범 내려온다'...2020 가요계 '밈'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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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0.23 16:40


편집자주

[홍혜민의 B:TS]는 ‘Behind The Song’의 약자로, 국내외 가요계의 깊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전해 드립니다.

나훈아가 '밈'의 중심에 섰다. 데뷔 이후 무려 54년이라는 세월 동안 가요계 전설을 써 내려온 '가황' 나훈아가 2020년 유행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밈'(Meme: 유행 요소를 이용해 만든 사진이나 동영상) 문화의 주인공이라니, 어딘가 언밸런스한 조합이다.

중년 팬들의 심금을 울리는, 그러나 젊은 세대에게는 '그 시절 오빠' 정도로 여겨지던 나훈아를 2030 세대의 시선을 사로잡는 '밈' 문화의 중심으로 이끈 데는 그의 신곡 '테스 형!'의 힘이 컸다.

사실 '테스 형!'은 그간 나훈아가 선보여 온 음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결의 곡이다. 멜로디 역시 '가황'의 노래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신선함보단 추억에 가까울 만큼 정통적인 구성에 가깝다. 그런 '테스 형!'가 '밈' 콘텐츠 열풍에 서게 된 이유는 신선하다 못해 '센세이션'에 가까울 정도로 파격적인 가사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를 무려 '테스 형'이라고 부르며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 가 본 저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가 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 형"이라고 반문하는 남다른 연륜(?)은 젊은 세대들에게 '신선함'과 '재미 요소'로 다가왔다. 그런가 하면 중년층 팬들은 '소크라테스'라는 존재에 대한 현실적 반문을 통해 현 세태에 대한 메시지와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을 묵직하게 담아낸 나훈아의 '품격'에 열광했다.

'테스 형!' 무대가 공개됐던 KBS '2020 한가위 대기획-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에서 나훈아가 보여준 흰 민소매 티셔츠+청바지 패션 역시 2030 세대에게는 새로운 흐름으로 전달됐다. 이미 오랜 시간 나훈아가 고집해 온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착장이었지만, 젊은 세대에게 그의 스타일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속 프레디 머큐리를 연상케 만들었다.

요즘 핫하다는 스타들도 감히 도전하기 어려운 패션을 '옛날 아이돌' 정도로 여겨왔던 나훈아가 멋들어지게 소화한 채 열정적인 무대를 소화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한국의 '프레디 머큐리', 일명 '나레디 훈큐리'로 거듭난 나훈아는 '밈' 문화의 주인공으로 우뚝 섰다.

또 다른 '밈'의 주인공 이날치는 또 어떤가. 마치 홍대 앞 클럽 신에서 '나만 알고 싶은 밴드'로 활동할 것 같은 '힙한' 비주얼의 이들이 구성지게 엮어내는 음악은 다름 아닌 '퓨전 국악'이다.

최근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광고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됐던 '범 내려온다' '어류도감' '좌우나졸'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대중에 이름을 알린 이날치 밴드는 지난 2018년 결성 이후 판소리와 현대적 팝 장르 음악을 절묘하게 엮어낸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조선 후기 8명창 중 한 명인 이날치의 이름에서 밴드의 이름을 따와 소리꾼들을 중심으로 대한민국의 '정통 음악'을 다루고 있지만, 이들 밴드에서 전통적인 국악기들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베이스, 드럼 등 여타 밴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악기들이 이들의 음악을 완성한다.

레트로 등 과거의 무드가 현대적으로 재해석 되며 '힙'한 문화로 여겨지는 요즘, 이들의 파격적인 장르 변주는 1020, 2030 세대까지 흡수하며 현재 대중 가요계에서 가장 핫한 음악이 됐다. 특히 이들의 1집 타이틀 곡 '범 내려온다'는 유튜브 등에서 역대급 조회 수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은 뒤 다양한 '밈' 콘텐츠로 유행을 이끌고 있다. 분명 '옛것'으로 여겨지던 판소리 장르인데, 이를 중심으로 '밈' 문화를 향유하는 이들은 젊은 세대다. 전통을 바탕으로 어느 장르보다도 트렌디한 음악을 만들어 낸 이날치에 대중이 주목하는 이유 역시 전에 없던 '신선함'과 이를 통한 새로운 '재미'의 창출이었다.

2020년 지금, 가장 '힙'한 유행은 '밈' 문화의 중심에서 탄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표 당시에는 무시 받았던 비의 '깡'이 시간의 흐름 속 뒤늦은 '역주행'의 주인공이 되며 재조명받을 수 있었던 것 역시 대중이 이끈 '밈' 문화의 힘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 모두가 '밈'의 주인공을 꿈꾸며 '대박 신화'를 꿈꾸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비의 '깡', 나훈아의 '테스 형!',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등이 시사하는 '밈'의 조건은 한결같다. 형식과 틀을 깬 센세이션한 '발상의 전환', 파격적인 도전 속에서 탄생한 '신선한 재미'다. 이는 곧 '신선한 콘텐츠'를 원하는 대중의 니즈와 맞닿아 있다. 기약 없는 '한 방'을 위한 '밈' 코인에 탑승만을 꿈꾸는 대신, 보다 새롭고 파격적인 콘텐츠 양산에 힘을 쏟는 것이 곧 '2020 대한민국' 유행의 중심에 서는 지름길일 것이다.

홍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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