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년 만에 담장 허문 용산 미군기지 장교 숙소 가보니...

입력
2020.10.23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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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용산구 미군기지 부지는 '홍길동' 같은 땅이었다. 분명 우리 땅인데 한 세기 넘게 '우리 땅'이라 부르지 못했다. 1904년 러일전쟁으로 일본에 뺏긴 뒤 광복 후 미군기지로 사용되면서 시민들은 쉬 발을 붙일 수 없었다.

지난 21일 찾은 지하철 중앙선 서빙고역 맞은편 미군기지 내 장교 숙소 5단지. 금단의 땅이던 이 곳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미군의 평택 기지 이전으로 올해 초 이 땅의 소유권을 확보한 정부는 지난 8월, 116년 만에 처음으로 시민에 개방했다. 돌려받은 용산 미군기지 부지를 토대로 용산공원 조성을 추진하며 진행한 첫 공개였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용산구'로 새 주소

그 결과, 서빙고역 쪽으로 난 높이 2m가 넘는 담장 15m는 허물어졌다. 유모차를 끌고 미군 장교 숙소 부지를 찾은 김미숙(35)씨는 "코로나19로 갑갑했는데 잔디밭도 걷고 이국적인 건물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5만㎡ 부지의 주소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대한민국 용산구'로 바뀌었다. 땅의 '새 주인'이 된 용산구는 지난 16일 이곳에서 특별한 '생일 잔치'를 열었다. 성장현 구청장은 '용산구민의 날' 행사에서 "116년 만에 우리 품으로 돌아온 용산의 안방이자 용산공원 부지에서 지자체 행사를 처음으로 열게 됐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가슴이 벅차다"며 감격해 했다.



대사관 직원 숙소 공원 밖 이전 주도

정부는 미군장교 숙소 부지 등 용산기지를 활용해 여의도 면적(윤중로 안쪽)과 비슷한 300만㎡에 국가공원인 용산공원 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인근 국립중앙박물관과 전쟁기념관 부지와 엮어 남산부터 용산공원 그리고 한강을 잇는 남산~한강 녹지 축을 2027년까지 구축하는 게 큰 틀이다.

이 과정에서 구는 큰 역할을 했다. 성 구청장은 국립중앙박물관 옆 공원 북쪽에 들어설 예정이던 미 대사관 직원 숙소를 공원 밖 한강로동 개발단지로 이전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공원 녹지 축이 끊기는 것을 막은 셈이다. 정부와 서울시가 꾸린 용산공원조성추진위원회와 별도로, 2018년부터 64명으로 구성된 공원 조성 TF를 꾸려 일군 성과였다.

구는 남북 분단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한국이 유라시아 대륙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희망의 통일 공원'을 모토로 공원 조성 추진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장 많은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은 공원 부지 내 미군 잔류 시설인 드래곤힐호텔 공원 밖 이전.

성 구청장은 "국가공원인 만큼 미군이 운영하는 호텔은 공원 밖으로 재배치돼야 한다"며 "한국과 미국 정부의 동맹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용산이나 서울 시내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현실적인 방안 등을 찾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이 활용하던 아리랑 택시 부지를 직접 반환받은 경험을 살려 보다 '온전한 공원' 조성을 위한 대안을 찾겠다는 게 목표다.

양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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