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HC "생닭 염장만" 국세청 속여 800억원 부가세 탈루 의혹

입력
2020.10.22 09:30
"마늘맛 추가 뒤 '1차 가공만' 속여… 면세 받고
부가세 면세 대상인 생닭 가격에 광고비 숨겨"
기동민 의원 "국세청, 탈세 정당화 빌미 제공"
김대지 국세청장 "엄정하게 대응하겠다"


국내 치킨 프랜차이즈 BHC가 국세청을 속여 약 800억원 상당의 부가가치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세청으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BHC는 원재료인 생닭을 가맹점에 공급하기 전에 양념을 넣거나 숙성하는 공정을 거치고도 ‘보존성 향상을 위한 1차 가공’이라고 속여, 국세청을 기망한 것으로 볼 만한 정황이 발견됐다.

현행 부가가치세법은 가공하지 않은 식료품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한다(제26조). 정육 또는 건조, 냉동, 염장 등 원재료의 성질이 변하지 않는 수준의 1차 가공을 거친 경우에만, 이를 가공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시행령 제34조).

BHC는 이 조항에 따른 면세를 받기 위해 국세청에 “공정 변경이 부가가치세법상 1차 가공에 해당하는지”를 질의했고, 국세청은 “보존성 증진을 위해 염장액을 투입했다”는 BHC 주장을 믿고 “면세대상에 해당한다”고 회신했다.

그러나 기동민 의원실이 국내 프랜차이즈 업계 소재류 연구개발분야 전문가에게 의뢰해 BHC의 1차 공정 성분을 분석한 결과, BHC가 변경한 염장제는 보존으로서의 기능뿐 아니라 맛에 변화를 일으킬 정도의 공정인 것으로 조사됐다. 분석에 사용된 새로운 염장제에는 기존 염장액에 없었던 마늘맛과 양파맛이 추가됐고 정백당이 추가로 첨가돼 단맛이 강해졌으며 짠맛도 강해졌다. 단순 1차 가공이 아니라, 부가가치세가 부과돼야 하는 공정이라는 뜻이다.

기동민 의원은 “BHC가 이 같은 공정이 면세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구체적 정황도 제시했다. 2015년 10월 BHC가 전체 가맹점을 대상으로 게시한 공지사항에는 수도권 100개 지점을 대상으로 실시한 ‘변경 신선육 테스트 결과’가 담겼다. 본사는 맛의 차이와 식감의 차이에 변화가 있는지 묻고 가맹점주들의 의견을 들었다. 2단계에 걸친 공정을 일원화한 뒤 본사가 맛과 식감의 변화를 파악했다는 점에서 ‘공정을 거친 생닭이 미가공식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BHC가 염장 공정 변경으로 발생한 비용을 전국 가맹점에 ‘광고비’ 명목으로 부과하면서 이를 면세 대상인 생닭 가격에 포함시킨 정황도 드러났다고 기 의원은 밝혔다. BHC는 가맹점에 ‘생닭 1마리당 200원의 광고비’를 부과했는데 염장 공정 변경 이후에는 추가로 200원을 부과했다.


기 의원은 “이 과정에서 BHC가 탈루했다고 의심받는 부가가치세 규모는 8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며 “2015년 부가세 귀속분의 납부제척기간이 내년 초에 도래하는 만큼 국세청의 조속한 조사와 후속조치가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기동민 의원은 “탈세를 감시하고 엄정하게 조사해야 할 국세청이 오히려 일부 기업의 탈세행위를 정당화하는 근거와 빌미를 제공했는지 점검하고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본사와 가맹점 간 불공정거래행위는 가맹점에 대한 비용 전가 외에도 탈루 의혹이 제기될 수 있으므로 국세청은 여러 가능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대지 국세청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법령해석은 납세자가 제출하는 자료를 갖고 판단한다. 해당 질의에 대해 ‘확정적으로 면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고, 신고나 조사를 통해 확정한다”며 “엄정하게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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