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 후보로 낼 인물이 없다."
지난 16일 부산을 방문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지역 언론 간담회 비공개 발언이 흘러나오자 국민의힘은 발칵 뒤집어졌다. "자해적 행동"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 위원장의 퇴진을 전제로 한 '조기 전당대회 개최 주장'까지 제기됐다.
간담회 참석자 등의 발언을 한국일보가 22일 취재한 결과, 김 위원장은 '당장 내세울 인물'이 없음을 토로하면서도 마음에 품고 있는 인물상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국내외 정치인 3명을 예로 들면서다. 올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16일 간담회 화두는 단연 '부산시장 후보'였다. 김 위원장은 울라프 숄츠 독일 재무장관이 함부르크 시장을 지낸 7년간 일군 함부르크시의 발전상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김 위원장은 "함부르크는 작은 도시인데 시장이 제대로 나오고 오래 재임하면서 '스마트 항만'을 만들었다"며 "지금 부산시장이 될 사람은 그런 콘셉트를 갖고 나와 부산 시민에게 어필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부산이 세계적 항구 도시로 만들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데, 지금 시장이 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 중에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회의원 3, 4선 해 봤으니 이번엔 지방자치단체장이나 해봐야겠다'는 사람이 당선되면 지자체가 발전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올드보이'가 그저 정치 경력을 추가하기 위해 출마해선 승산이 없고, 지자체의 발전 구상을 진심으로 고민한 인물이 후보로 나서야 한다는 의미였다.
김 위원장의 '마크롱 사랑'은 익히 알려져 있다. 그가 39세의 젊은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2017년. 김 위원장은 그 때부터 마크롱 현상을 연구했다. 사무실에서 마크롱의 저서 '혁명'을 손 닿는 곳에 두고 지낼 정도다. 김 위원장은 간담회에서 마크롱이 대통령이 된 과정을 설명했다.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사람이 쇠락하는 프랑스 정치를 보고 작은 책('혁명')을 펴내 대선 출사표를 던졌고, 국민의 선택을 받아 양당 구조를 무너뜨렸다. 지금 우리는 그런 사람을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못 찾는다." 김 위원장의 목소리엔 안타까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차기 대선 후보로 '1970년대에 태어난 젊은 경제 전문가'를 호명했다. 김 위원장이 마크롱 대통령을 거론하며 한숨을 쉰 건, 그런 인물을 찾아 놓고도 감추고 있는 건 아니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한국 정치사에서 뚜렷한 비전을 국민에 제시하면서 스스로 나온 유일한 인물"이라고 간담회에서 치켜세웠다고 한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낙점되려면 '자기만의 정치철학'과 '권력 의지'를 스스로 발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이었던 2001년 김 위원장을 찾아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며 도움을 요청한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은 "정당의 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자천ㆍ타천으로 거론되는 내년 보궐선거 출마 희망자들이 이리저리 따지며 좀처럼 나서지 않는 상황을 꼬집는 취지였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보다 한 발 앞서 '조기 선거 모드'에 들어간 만큼, 뜻 있는 인사라면 타이밍만 재지 말고 자신만의 비전을 적극적으로 밝히라는 메시지"라고 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