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백신 긴급 물량 어디로 갔나… 보건소마저 "우리도 몰라"

입력
2020.10.22 08:30
34만 도즈 공급, 청소년 물량 15% 어린이용 전환해도
소아과는 여전히 "백신 없다"..."입고 계획도 없어"
상온노출, 백신후 사망에 이어 백신 부족장기화까지


12세 이하 유아ㆍ어린이들의 무료접종을 위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긴급 물량을 투입했지만, 여전히 백신 없는 소아과병ㆍ의원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또 관할 보건소에서 어린이용 백신을 갖춘 병원을 안내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음에도 실제 보건소에는 관련 정보가 없거나 잘못된 정보를 안내하고 있었다. 정부가 어린이용 백신을 제대로 확보도, 관리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이다. 상온노출, 접종 후 잇따른 사망, 그리고 소아용 백신부족사태 장기화까지 겹치면서 국가 백신접종사업을 지탱할 국민의 신뢰가 뿌리 채 흔들리는 상황이다.


“백신 없다”던 소아과...지금도 “언제 들어올지 기약 없다”

한국일보는 어린이용 백신 부족 사태가 본격화 된 지난 13일 “어린이용 백신이 없다”고 답했던 수도권의 소아청소년과 5곳에 일주일이 지난 20일 어린이 접종 가능여부를 다시 확인했다. 하지만 5곳 모두 여전히 “백신이 없다”고 답했다.

질병관리청은 어린이용 백신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 16일까지 전국 병ㆍ의원에 예비 독감백신 물량 34만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를 공급했다. 또 지난 14일부터는 청소년(13~18세)에게 접종하기 위해 정부가 미리 구매해 둔 백신의 15%를 어린이용으로 활용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조치도 부족사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서울 성북구의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은 “보건소에서 청소년용 물량을 어린이에게 사용하라고 제공해줬지만 몇 십 도즈를 두 번 나눠 준 게 전부여서 금방 다 나갔다”고 말했다.

이같은 어린이용 백신 부족은 수도권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슷한 상황이다. 21일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전국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여전히 ‘백신이 없다,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정부 계획대로 청소년용 물량 15%를 다 공급해도 어린이용 백신은 부족하다”며 “그런데 보건소마다 15%를 다 주지도 않고 10%만 주거나 아예 안 주는 곳도 있어 병ㆍ의원들이 15%를 다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접종 가능 병원 물어봤지만…보건소 “우리도 몰라”

어린이 백신 부족 사태로 부모들은 병원마다 일일이 전화해 접종 가능 여부를 물어야 한다. 가까운 병원은 모두 백신이 없어 다른 지역까지 전화로 알아보고 가서 접종한 부모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부모들의 불편이 가중되자 질병청은 “보건소가 의료기관별 독감 백신 공급 내역을 파악해 어린이 접종이 가능한 의료기관을 적극 안내하고 있다”며 “관할 소재지 보건소 또는 1339콜센터를 통해 접종 가능한 병원을 안내 받으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보건소에 전화해도 접종 가능한 병원은 찾을 수 없었다. 20일 서울 A구 보건소에 전화해 어린이 예방 접종이 가능한 소아청소년과의원 1곳, 내과의원 1곳, 가정의학과의원 1곳 등 총 3곳의 의원을 안내받았다. 하지만 이 3곳의 의원에 전화하니 모두 “어린이용 백신이 없다”며 접종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서울 B구 보건소는 “어린이용 백신은 병원마다 각자 구매한 백신이라서 보건소도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직접 병원마다 전화해서 확인하라”고 안내했다. 질병청 발표와 달리 보건소들은 백신 공급 현황을 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12세 이하 68.8%접종 ..."추가 입고 없다"



생후 6개월~12세 이하 어린이는 면역력이 낮아 독감 백신을 꼭 맞아야 하는 우선접종 대상이다. 12세 이하로 1회만 접종해도 되는 어린이는 총 478만명인데, 21일 기준 329만명(68.8%)이 접종했다. 아직 어린이 149만명이 더 접종을 해야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일보가 통화한 소아청소년과의원들은 “백신이 언제 들어올지 병원도 알 수 없다”거나 “앞으로 추가 입고는 어려울 것 같다”고 밝혔다. 백신 수급이 언제 정상화될지도 불분명한 것이다. 이같은 백신 부족 사태에 대해 정은경 질병청장은 19일 브리핑에서 “소아청소년과에 공급된 물량이 예년에 비해 적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소아청소년과의원들이 백신을 공급받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는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가격으로 백신을 대량구매하면서 촉발됐다고 보고 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예년에도 병의원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백신을 구매했지만 정부 납품 가격과 소아과의원에 납품하는 시장 가격이 거의 동일했기 때문에 소아과의원들이 백신제조사나 도매상으로부터 백신을 구입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며 “하지만 정부가 올해 너무 낮은 가격으로 백신을 대량구매해버려 백신제조사들은 남은 적은 물량을 비싸게 공급하려고 해 소아과는 백신 구매가 어려워졌다”고 설명했다.

어린이에게 무료 접종한 백신은 소아과가 백신제조사나 도매상으로부터 더 비싸게 샀더라도 추후에 정부와 계약한 단가인 1도즈 당 1만410원만 내면 된다. 하지만 백신사는 유료 접종의 경우 병원에 1도즈 당 2만9,000원 정도에 팔 수 있어 유료 접종분으로 공급하려 하고, 무료 접종분으로 사용됐다고 해도 정부 단가(1만410원)보다 더 높은 금액을 소아과의원에 요구한다는 것이다. 임 회장은 “백신제조사가 낮은 백신 가격 때문에 소아과의원에 납품을 꺼리게 만든 게 정부”라며 “백신 가격만 제대로 산정했어도 이런 백신 부족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질병청은 이처럼 왜곡된 백신 수급 문제에 대해 “국가 예방접종 사업에 참여하기로 한 제조사는 12세 이하 접종 건에 대해 백신 가격을 정부 단가 기준으로 산정하기로 사전 협의했다”며 “일부 제조사나 도매상이 정부 단가 기준보다 추가 요구해 의료기관이 무료 접종을 기피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공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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