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많은데 인물은 없다'... 김종인 '고독한 독설'의 이유

입력
2020.10.19 10:10


"국민은 국민의힘이 아직도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의원들 모두가 인식해 주길 바란다."

18일 열린 국민의힘 화상 의원총회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내년 4월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언급하며 비판을 쏟아냈다. "혼연일체가 돼 과거를 잊고 새 변화를 통해 새 미래를 창조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이라고 상황을 규정한 김 위원장은 지난 16일 부산에서도 "(보궐선거에 내보낼) 주자가 보이지 않는다"고 쓴 소리를 했다.

보궐선거까지는 6개월이 남았다.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완패한 직후와 비교하면 국민의힘을 향한 민심의 흐름도 나쁘지 않다. 자천ㆍ타천으로 거론되는 후보군도 넘쳐난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이 연일 '아픈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들리지 않는 與 지지율

김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들의 성추문으로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구도 자체가 나쁘지 않다고 보고 있다. 최근 사석에선 ‘서울 같은 대도시 시민들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가장 불만이 많다’는 취지로 언급했다고 한다. 보궐선거 승리를 위한 토양 자체는 다져졌다고 본다는 얘기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기대와 여론의 추이는 조금 다르다. 정부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신이 최고조에 달하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문이 정국을 달군 8월 2주차 리얼미터 조사에서 국민의힘의 서울 지역 지지율은 39.8%로 치솟았다. 지난 10월 첫주 조사에선 29.3%로 내려 앉았다. 리얼미터 조사에서 부산ㆍ울산ㆍ경남(PK) 지역 국민의힘 지지율도 지난달부터 하락세다. 권력형 비리 문턱까지 간 라임ㆍ옵티머스 사태 등 여권발 악재가 터지고 있지만, 국민의힘이 받아 안지 못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정당 지지율보다는 여전히 40~50%대를 기록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에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여권의 지지율을 떠받치고 있다는 게 김 위원장 분석이다. "우리가 조금 더 정책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당을 자극하는 것은 코로나19가 종식될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정치 아닌 정책으로 승부 볼 인물 아직 없다"

김 위원장은 국민의힘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기성 정치인은 스스로 쇄신할 능력이 별로 없다'는 게 그의 소신이다.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나설 인물 부재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건 그런 국민의힘에서 위기감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김 위원장이 16일 부산에서 “‘국회의원 3, 4선 하고 재미가 없으니 시장이나 해볼까’ 하는 느낌을 받는다”며 중진 의원들을 저격한 것도 '자극'을 노린 것으로 볼 수 있다.

김선동 전 사무총장이 서울시장 출마를 재다 사무총장직을 시끄럽게 사퇴한 과정도 "당 분위기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되겠다"는 김 위원장의 생각을 재촉했다는 후문이다.

'정치적 수사'보단 '정책'으로 승부할 인물이 필요하다는 것이 김 위원장의 구상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실력 있는 인물’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며 “의정 활동으로 국민에게 어필할 후보군이 지금은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티 김종인 목소리' 커지는데

김 위원장의 이런 구상이 국민의힘에 저항 없이 녹아들지는 미지수다. '인물 부재론'에 대해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18일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차라리 정당 문을 닫아라"라고 직격했다. 4선 중진인 권영세 의원도 "당 대표로서 적절치 않은 얘기"라고 제동을 걸었다.


차곡차곡 쌓이는 김 위원장을 향한 불만이 폭발해 파국을 맞는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김 위원장이 본인 생각을 당보다 언론에 먼저 던지는 등 당을 깔아 보는 듯한 행보에 불만을 표하는 중진 의원들이 적지 않다. 국민의힘 3선 의원은 “우리 당 후보가 주목을 받을 수 있게 뛰어 다닐 터전을 만들어주는 게 김 위원장의 임무인데, 자꾸 ‘후보 탓’을 하면 공감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끝으로 임기를 마친다. 보궐선거에서 이겨야 김 위원장의 다음 정치적 행보가 가능해진다. 김 위원장이 2022년 3월 대선까지 '역할'을 하려 한다는 관측이 무성하다. 국민의힘을 계속 '채찍질' 할지, 반발 목소리에 적당히 타협할지가 김 위원장과 국민의힘의 '미래'를 가를 것이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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