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노동자 산재보험 강제"...너무 늦게 나선 당청

입력
2020.10.15 21:20


CJ대한통운 소속 택배노동자 김원종씨는 하루 평균 400여건의 물량을 배송했다. 매일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그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5시간 30분이었다. 격무에 시달리던 김씨는 지난 8일 갑작스런 호흡 곤란으로 사망했다. 과로사였다. 택배물류 분류작업에 추가 인력을 배치하기로 했던 회사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사실도 전해졌다. 하지만 김씨는 산업재해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사망 20여일 전인 지난달 15일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를 냈기 때문이다.

특수고용직(특고) 종사자의 산재보험 사각지대가 잇따라 드러나면서 당청이 뒤늦게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15일 밝혔다. 지난 6일 고용노동부가 특수고용직 산재보험 적용제외 사유 제한 방안을 발표한 뒤, 청와대와 여당이 지원에 나선 모양새지만, 늦은감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이날 MBC 라디오에 출연해 “일을 장기간 쉬거나, 육아를 하거나, 질병이 있거나 등의 사유가 아닌 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할 수 없도록 엄격하게 제한하는 방향으로 (특수고용 노동자) 보호를 강화하는 구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당정청은 일단 이번 정기국회 내에 해당 법안을 처리하는 게 목표다.

현재까지 정부가 산재보험을 적용한 특수고용 직종은 택배기사를 포함해 14개 직종이다. 다만 본인이 적용 제외를 신청하면 가입하지 않을 수 있다. 임종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전국 특고 노동자 중 83%는 산재적용 제외를 신청했다. 특고 노동자 본인이 보험료 절반을 내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지만, 사측의 강요 등 제도가 악용될 소지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CJ대한통운 택배기사 김종성씨도 대리점주의 요구로 산재보험 적용제외를 신청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 이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김씨가 제출한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가 대필된 것이라는 의혹도 나왔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고용부에서 제출받은 김씨 신청서 사본에 기재된 필체가 다른 사람 신청서 필체와 같아, 사실상 한 사람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환노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특고 노동자 산재제외신청 제도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며 정부와 택배업계를 향해 대책을 요구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육아, 질병, 휴ㆍ폐업의 경우를 제외하고 특고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을 아예 폐지하는 ‘전국민 산재보험법’을 전날 대표발의 했다. 올해에만 8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했다. 정치권의 움직임이 늦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양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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