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최숙현 선수 사망 사건을 계기로 지난 8월 스포츠윤리센터(윤리센터)가 출범했다. 대한체육회 산하 민원 기관은 문을 닫고, 민원 기관에 이미 접수돼 있던 비리ㆍ비위 사건은 윤리센터가 맡았다. 윤리센터의 뒤늦은 조사로 체육계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던 난맥상이 확인됐다. 신고를 받고도 몇 년이나 조사를 시작하지도 않거나, 문제를 일으킨 기관에 사실상 '셀프' 조사를 시키는 등 대한체육회의 '직무유기'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1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스포츠윤리센터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한체육회 산하 스포츠인권센터와 클린스포츠센터가 2017년과 2018년 접수하고도 올해까지 처리하지 않은 미해결 사건은 모두 37건이다.
이 중 5건은 대한체육회가 2, 3년간 사실상 뭉개고 있었다. 2017년 10월 '전북지사배 보디빌딩대회'에선 규정 위반과 뇌물 요구가 있었다는 신고가 클린스포츠센터에 접수됐다. 그러나 대한체육회는 3년 넘게 조사를 개시하지 않았다. 대한체조협회 체조꿈나무 선수단 담당자가 공금을 횡령했다는 신고, 대한농구협회가 팀ㆍ지도자ㆍ선수 등록비를 과다 요구한다는 민원도 마찬가지였다.
'고양이에 생선 맡기는 격'으로 대응한 경우도 많았다. 2017년 10월 대한체조협회의 아시아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정 의혹이 있다는 신고가 클린스포츠센터에 접수됐다. 2019년 6월 대한체육회는 사건 조사를 대한체조협회에 맡겼다. 사건은 당연히 해결되지 않았다. 대한체육회는 올해 8월 윤리센터가 출범하고 나서야 대한체조협회에 뒤늦게 '결과 회신'을 요구했다. 최숙현 선수의 극단적 선택으로 문을 연 윤리센터가 없었다면 묻혀 있었을 일이다.
정부와 체육계의 '탁상 행정'은 그러나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지난 달 국민신문고에는 '울산 동구체육회장의 성희롱과 직장 갑질 조사 및 징계 요청' 민원이 접수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대한체육회에 사실관계 조사를 지시했다. 이미 한 달 전 윤리센터가 출범해 대한체육회의 조사 기관이 문을 닫은 뒤였다. 스포츠 단체들을 관리감독해야 할 문체부마저 책임을 방기한다는 뜻이다.
김예지 의원은 "문체부와 담당 기관들의 안일한 대응이 체육계에서 사건사고가 사라지지 않는 근본 원인"이라며 "체육계에 문제가 터질 때마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에 책임을 떠넘겼지만, 앞으로는 윤리센터와 문체부가 그 책임을 온전히 져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