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악가들이 양철지붕 위로 올라간 이유는

입력
2020.10.12 15:58
이상진 한국환경음악협회장
"코로나로 지친 국민들에게 위로를…
 카네기홀 같은 공연장 건립이 꿈"


“양철지붕이 우그러지고 부서져도 상관 없어요. 노래하고 연주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니까요.”

지난 8일 오후 첨성대와 계림, 반월성 등 신라천년의 유적이 마주 보이는 경북 경주시 첨성로 도로변의 한 커피숍 지붕. 100㎡가 채 되지 않는, 경사가 완만한 양철지붕 위에서 특별한 음악회가 열렸다. 출연진들은 지붕 위에서 건반과 바이올린 첼로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국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성악가들이 펼치는 ‘첨성대에 가면 핑크뮬리 음악회’였다. 여기서 가면은 가다(go)와 가면(假面, mask)이라는 2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오후 5시부터 1시간 30분간 계속된 공연은 환상적이었다. 첨성대를 배경으로 천년고도 경주를 붉게 물들인 석양과 낮게 깔린 구름이 지붕 위 연주자들이 구름 위에서 공연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이날 공연 주인공은 테너 이상진, 소프라노 김한경, 피아노 최희정, 첼로 구본훈, 에스피 아르떼 앙상블팀과 스텝 등 10여 명이다. 7명은 지붕 위에서, 그랜드피아노 등 일부 연주자들은 1층에서 환상의 선율을 선사했다.


이번 공연을 이끈 이상진(54) 한국환경음악협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심신이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고 힘을 주기 위해 회원들과 지붕 위 음악회를 기획했다”며 “올해 4년째 가면 이란 음악회를 열고 있는데, 코로나 확산을 예방하면서 주민과 관광객들에게 음악 감상의 기회를 줄 수 있어 최고의 콘서트”라고 자랑했다. 이 공연은 경북도 지역예술 특성화사업으로 열렸다.

사실 이번 공연은 아예 무산될 뻔했다. 넉넉지 않은 예산이었지만 좀 규모 있게 ‘보문에 가면’ 음악회를 ‘성대’하게 열 계획이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 때문에 대관도 취소됐고, 그나마 남아 있던 예산도 날아갔다.

이 회장은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자신이 운영중인 커피숍 지붕에서 첨성대 주변 핑크 뮬리가 환상적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지붕이 내려 앉아도 어차피 내 집인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자와 스텝 등 7명이 키보드와 스피커 등을 들고 올라갔다. 국내 최초의 지붕 위의 콘서트나 아닐까 한다”고 개최 배경을 설명했다.

이씨는 그 동안 주로 서울에서 모델과 성악가로 활동해 왔다. 모친 병간호를 위해 경주로 귀향한 뒤 지역 예술인들과 왕성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환경음악회도 이 회장이 2008년 성악을 전공한 지인들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음악으로 표현하자는 취지로 결성했다. ‘감포 항구음악회’, ‘성악가가 부르는 가요 50년’ 등 50여 차례의 공연을 선보인 지역 대표 예술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붕 위 음악회가 열린 자신의 커피숍에 리꼴라 마르타루치 등 세계적인 음악가와 국내 유명 연예인들도 방문한 이름값과 인적네트워크를 활용해 미국 맨해튼의 카네기홀에 버금가는 공연장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성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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