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보호" "골목상권 넘봐"…격화되는 현대차 중고차시장 진출 논란

입력
2020.10.11 21:32
17면
현대차 중고차 시장 진출 선언에
중고차 업계 "영세업자 이익 빼앗아"
"중고차 가격 더 오른다" 시각도

“소비자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다.”(현대자동차)

“대기업이 영세 사업자의 이익마저 빼앗으려 한다.”(중고차 업계)

현대자동차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놓고 대기업이 신산업을 발굴하는 대신 손쉽게 이익을 추구하려고 골목상권에 뛰어든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중고차 판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서 그간 대기업의 시장 참여가 제한돼왔다. SK그룹이 중고차 거래 플랫폼 ‘SK엔카’를 사모펀드인 ‘한앤컴퍼니'로 매각한 것도 이 규제 때문이다. 중기 적합업종 지정 이후 중고차 시장은 자연스레 소상공인 중심으로 형성됐다.

중고차의 중기 적합업종 지정은 지난해 2월 기한이 만료됐다. 이에 기존 업체들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진출을 제한하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을 신청했지만, 동반성장위원회는 부적합 의견을 냈고 현재 중소벤처기업부의 결정만 남은 상태다. 현대차는 이 틈을 노리고 중고차 시장 진출을 사실상 선언했다. 김동욱 현대차 정책조정팀 전무는 지난 8일 중기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중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 완성차 업체의 진입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중고차 판매업 진출을 처음 공식화했다. 현대차가 중고차 사업을 시작하면 다른 완성차 업체들의 시장 진출은 시간 문제일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그간 소비자 후생 개선을 위해 중고차 시장 진출이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자동차산업협회 관계자는 “중고차에 대한 낮은 신뢰도가 소비자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해외처럼 중고차에 대해 완성차 업체의 인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외 시장의 수입차 브랜드들은 매장에서 신차와 '인증 중고차'를 동시에 팔고 있다. 인증 중고차는 완성차 업체들이 5∼6년 안팎 된 중고차를 정밀 점검ㆍ수리하고 보증 기간을 연장해 판매하는 차량을 말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미국 중고차 시장의 인증 중고차 비율은 5% 내외에 불과하지만, 다른 중고차 품질까지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중고차 업계는 대기업인 완성차 업체들이 시장에 진출하면 사실상 독점화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자체 판매망을 이용해 물량을 독점하는 등 시장 지배력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진출은 소상공인 위주의 시장을 붕괴시켜 대규모 실업을 일으킬 것”이라며 “내수시장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진 완성차 업체들이 중고차까지 직접 판매하면 중고차 가격도 더 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중고차 업계는 국내 대기업들이 중고차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데는 매출이 수조원대인 수입차 업체가 규제에서 제외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한다. 수입차 브랜드들은 중기 적합업종 규제를 적용받지 않았기 때문에 국내에서 중고차를 매입해 수리한 뒤 인증 중고차로 신차와 연계해 판매해왔다. 현재 국내에서 중고차 사업을 하는 수입차 브랜드는 13개다. 심지어 아우디, 재규어랜드로버, 페라리, 폭스바겐, 볼보 등은 중고차 판매업이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뒤 중고차 시장에 진출했다. 곽태훈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회장은 “중고차 매매업 소상공인들은 대기업 진출로부터 보호 받아야 한다”며 “현대차가 시장에 진입하면 상생 방안이 나오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박관규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