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던 울산 화재, 초고층 건물 안전에 경각심을

입력
2020.10.10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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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 전날인 8일 심야에 울산 남구 33층 주상복합 아파트에서 발생한 큰 불은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있는 초고층 빌딩들이 화재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 준다. 연기를 마신 주민 90여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소방당국의 기민한 대처와 주민들의 침착한 대피로 인명 피해가 최소화된 점은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강풍 탓에 불길을 잡을 때까지 10시간이 넘게 걸렸고, 한때 건물 전면이 불길에 휩싸여 방송과 SNS 등으로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당국은 부상자와 이재민을 돌보는 데 최선을 다하면서 동시에 화재 원인 규명에 신속히 나서야 한다.

이번 불은 12층 발코니에서 발화돼 외벽을 타고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물 외벽은 알루미늄판 사이에 단열재를 접합한 알루미늄 복합패널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외장재는 단열에는 뛰어나지만 단열재와 접착제 종류에 따라 화재에 취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의 37층 오피스텔 화재 이후 30층 이상 건물 외벽을 불연화하도록 규제가 강화(2012년, 2015년)됐지만 이 건물은 2009년 준공돼 강화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소방법 강화 이전에 지어진 초고층 건물들이 화재의 사각지대가 되지 않도록 추가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울산에는 초고층 화재를 진압하는 70m 고가사다리차가 없어 소방관들이 개별 호실에 진입해 일일이 진압하는 방법을 썼다고 한다. 전국에 일반 사다리차는 461대가 있지만 23층 높이까지 진압할 수 있는 70m 고가사다리차는 10대 뿐이라고 한다. 2016년 3,266개였던 30층 이상 초고층 건축물은 현재 4,692개에 달할 정도로 증가 속도가 가파르다. 불이 나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당국은 초고층 건축물의 소방안전 제도 개선, 화재대응 장비와 소방시설 강화책 마련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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