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출국 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추천받았던 책이 있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ㆍ대니얼 지블랫 교수의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민주주의의 관례와 불문율, 자유와 평등의 원칙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2017년 임기 초반 사례를 중심으로 덤덤하게 서술했다.
처음 읽을 때는 당파성이 떠올랐다. 미국 민주당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독재자'라며 조롱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미국식 민주주의 전통 훼손의 책임을 공화당과 민주당의 엘리트ㆍ워싱턴 중심 양당 정치 폐해나 극단적 정치 양극화에서 찾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으로만 돌린다는 느낌도 강했다.
지난 한 달간 주로 트럼프 대통령 관련 기사를 작성하면서 생각은 복잡해졌다. 대선 정국임을 감안해도 그의 행동은 도를 넘어섰다. 233년 미국 민주주의의 역사는 가볍게 무시되고 조롱과 거짓말이 판을 친다. 인종ㆍ지역ㆍ빈부격차를 선거공학으로 접근하고 백인남성의 욕망만 자극하는 선거운동은 최악이었다. 2009년부터 심화된 공화당의 우경화가 악순환을 불러왔다. 아무리 잘못해도 40%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그를 지킨다.
그렇다고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당선이 해결책인가. 그의 집권으로 미국이 제 궤도를 찾을 것이란 보장도 없다. 이미 정파성을 너무 드러내는 언론, 극단으로 치닫는 1인 미디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득세, 공화당만큼 고루한 민주당 주류 정치인들을 떠올리면 그닥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하긴 남 손가락질 할 때가 아니다. 한국의 정당과 언론은 어떤가. 앞에 소개한 책 저자들은 "평등과 예의, 자유와 공동의 목표에 대한 인식은 20세기 중반 미국 민주주의의 정신이었지만 오늘날 위기에 처했다"고 했다. 한국은 그 정도에 도달했다가 추락하는 정치문화 수준도 아니라는 게 안타깝다. 미국이 11월 3일 대선을 통해 원조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한국도 거기서 교훈을 얻어 2022년 대선을 준비하는 꿈의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과연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