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못  줄인 '마라톤 1분'

입력
2020.10.1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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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킵초게의 도전


마라톤 세계 기록은 케냐 선수 엘리우드 킵초게(Eliud Kipchoge, 1984~)가 2018년 베를린마라톤에서 세운 2시간01분39초다. 1908년의 첫 공인 세계기록(2시간55분18초)을 110년 만에 근 한 시간을 단축한 거였다. 하지만, 1967년 호주 선수 데릭 클레이턴이 2시간9분대 기록을 수립한 이래 50년이 넘도록 아무도 우수리 10분을 줄이지 못했다. 비약적으로 발전한 스포츠과학의 도움을 받고도 그랬다. 마라토너에게 2시간 장벽을 뛰어넘는 것은 인류가 달에 첫 발을 디디는 것에 비유된다. 그보다 어렵다는게 입증돼 왔다.

2014년 시카고 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이래 지난해 런던 대회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메이저대회 우승을 이어온 지존의 마라토너 킵초게에게 그 꿈은 더 각별했을 것이다. 2019년, 만 35세의 킵초게는 어쩌든 저 장벽을 넘기로 했고, 다수의 스포츠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영국의 한 화학회사(INEOS)가 그를 부추겼다.

10월 1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INEOS 1:59 Challenge'는 공식 대회가 아니라 킵초게의 기록 도전 이벤트였다. 2시간 벽을 허물기 위해 주최 측은 이례적으로 평이한 코스를 짰고, '기러기 진용'을 갖춘 한 무리의 장거리 선수들을 킵초게 앞에서 교대로 달리게 해 받을 공기저항을 최소화했고, 목표에 맞춰 페이스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나이키사는 출시도 안한 첨단 마라톤화(Vaporfly)를 그에게 제공했고, 달리는 동안 그는 에너지 보강에 필요한 탄수화물 음료를 무제한 제공받았다. 킵초게는 그날 1시간59분40초 기록을 달성했다.

당연히 그 기록은 인정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거센 비난과 냉소를 겪었다. 돈으로 기록을 샀다, 스포츠 정신을 저버렸다, 자본가에게 마라톤을 팔아넘겼다….하지만 그 이벤트는 2시간 벽의 험준함을 역설적으로 부각했다. 최고의 선수가 과학과 자본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얻은 시간은 단 1분59초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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