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주(州)가 시간당 우리 돈 3만원에 가까운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노동자 보호에 일가견이 있는 유럽 강대국들보다도 훨씬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도입 취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 가장 타격이 큰 저임금 노동자들을 보듬으려는 노력이라 빈곤층과의 연대를 제대로 보여줬다는 칭찬이 자자하다.
4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스위스 제네바주는 지난달 27일 최저 시급을 23스위스프랑(2만9,000원)으로 정하는 내용의 최저임금제 도입안을 발표했다. 스위스에서 쥐라주와 뇌샤텔주, 티치노주에 이어 네 번째지만 액수가 놀랍다. 주 41시간씩 한 달을 꼬박 일하면 노동자 한 명당 대략 518만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먼저 최저임금을 시행한 쥐라주(20스위스프랑)보다 높고, 프랑스(10.15유로ㆍ1만4,000원), 독일(9.35유로ㆍ1만3,000원) 등 주요 유럽국가들과 비교하면 두 배를 훌쩍 뛰어넘는다.
법안 도입 이유를 들여다 보면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이번 결정은 코로나19 확산으로 빈곤 문제가 크게 대두되자 주민들이 머리를 맞대고 내놓은 해법이다. 스위스는 연방정부 차원의 최저임금법이 없어 26개 주가 각각 최저임금 도입 여부를 주민투표로 정한다. 주민 다수가 높은 수준의 급여 지급에 공감했다는 뜻이다.
제네바는 국제 외교와 비즈니스의 중심지. 호텔 객실 점유율만 봐도 지난 2년간 90%에 달할 정도로 많은 방문객들로 붐볐다. 일상화한 풍요 탓인지 2011년과 2014년에도 최저시급 도입 방안이 주민 투표에 부쳐졌으나 모두 부결됐다. 특히 2014년에는 주민 76%가 반대 의견을 표명할 만큼 빈곤 구제에 대한 관심은 심드렁했다.
감염병은 주민들의 인식을 180도 바꿔놨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관광이 급감하면서 올해 제네바 내 호텔 객실 점유율은 평균 65%나 줄었고, 이에 지역사회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은 증폭됐다. 결과는 약 50만명이 참여한 주민투표에서 58%가 최저임금 도입에 찬성표를 던지는 이변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스위스 국경 노동자를 지원하는 독립기구 GTE의 미셸 차라트 회장은 가디언에 “이번 투표 결과는 도시 빈곤층을 향한 연대의 표시”라고 단언했다.
최저임금 도입으로 제네바 전체 노동자의 6%인 3만명 가량이 혜택을 볼 전망이다. 특히 이 중 3분의2가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이다. 프랑스 3TV는 “최근 실업이 늘고 무료급식 인원이 크게 증가한 데에 대한 해결책”이라며 이번 조치가 저임금 노동자를 구제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최저임금 도입을 지지해온 스위스노동조합 연합 역시 “빈곤 퇴치와 사회통합,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한 법안”이라고 반겼다. 해당 법안은 17일부터 발효된다.
스위스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 코로나19로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형태의 노동환경에 놓여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다. 독일은 7월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2% 인상하는 안을 발표했고, 미국 일리노이ㆍ네바다ㆍ오리건주도 같은 달 약 0.75달러의 인상을 단행했다. 모두 코로나19 사태에서 불평등한 위험에 노출돼 있는 필수노동자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는 6월 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은 저소득 가구에 즉각적인 소득 증가를 가져와 다른 어떤 코로나19 경기침체 대응보다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