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아들 구하기’로 만신창이...군의 ‘정치적 중립’이란?

입력
2020.10.05 08:00
<4> ‘정치 군인’이라는 오욕의 역사

편집자주

2014년 잠시 연재했던 ‘정승임의 궁금하군’을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군 세계에 정통한 고수보다는 ‘군알못’(군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는 글을 씁니다.



‘정치’라면 알레르기가 날 정도로 지긋지긋할 법한 군이 또 다시 ‘정치’로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3년 전 어느 카투사(KATUSAㆍ미8군 증강된 한국군 육군 요원) 일병이 떠났던 유별난 휴가 때문입니다. 1ㆍ2차 병가와 개인 휴가를 연달아 썼지만 병가를 증명할 명령서는 없고, 개인 휴가 명령서는 휴가 시작 다음날, 당직사병의 복귀 지시 직후 발부된 탓입니다. 이를 두고 전역한 병사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움직였기에 가능한 ‘특혜 휴가’ 혹은 '군무 이탈’(탈영)이라고 불렀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당시 집권 여당 대표였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 문제의 일병은 추 장관 아들 서모(27)씨였던 탓에 일이 커졌습니다. 검찰 수사를 이유로 침묵하던 국방부가 돌연 ‘서 일병 휴가가 적법하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내면서 추 장관을 지키는 ‘추방부’라는 비아냥이 나왔습니다. 취임 나흘밖에 안 된 서욱 국방부 장관은 국회에서 난타 당하는 추 장관에게 ‘많이 불편하시죠”라는 말을 건넸다가 “추 장관 심기보좌역이냐”는 지탄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헌법에 명시된 ‘군인의 정치적 중립성’ 의무를 어겼다는 지적이 특히 거셌습니다.

서울동부지검이 뒤늦게 수사에 속도를 내면서 국방부와 육군본부가 민간 검찰에게 ‘털리는’ 치욕도 있었습니다. 2013년 사이버사령부 댓글 사건(군 검찰), 2018년 국군기무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의 계엄령 문건 논란(민ㆍ군 합동수사본부) 때도 제 손으로 압수수색에 나섰던 군인데 말입니다. 급기야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과 연결해 “서 일병을 구하려는 노력의 10분의 1만 했어도 북한군에 피격된 공무원 목숨을 구했을 것”(4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이라는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국방부 입장에선 억울할 것도 같습니다. 군이 앞장서서 벌인 일도 아니고, 민원을 한 건 추 장관 쪽인데 말입니다. 서 일병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뽑으라는 식의 요구에 선발 방식을 제비뽑기로 바꾸며 ‘저항’한 것도 군이었습니다.


직접 정치판에 뛰어든 박정희ㆍ전두환의 ‘군부독재’

군이 필요 이상으로 쓴소리를 듣는 건 ‘정치 군인’으로 불렸던 과거의 업보 때문입니다. 육군 소장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4ㆍ19 혁명 이후 혼란기를 틈타 1961년 5ㆍ16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것이 시발점이었습니다. 박 전 대통령이 집권한 18년간의 군부독재가 10ㆍ26 사태로 막을 내리자,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육사 동기였던 노태우 9사단장을 비롯, 하나회(군내 비밀 사조직)를 주축으로 직속 상관이자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고 실권을 장악하는 12ㆍ12 군사반란을 일으키며 1980년 정권을 잡았습니다. 군인이 직접 정치판에 뛰어들던 시기였습니다.

‘군부 독재’를 이끌었던 선배들 탓에 군 수뇌부 자리에 오른 후배들은 30여년이 흐른 지금도 사상검증(?)을 받습니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마다 “5ㆍ16은 혁명이냐, 반란이냐”, “12ㆍ12 쿠데타에 대한 입장을 밝혀라”는 식의 질문이 단골이 된 겁니다. 30년 넘게 혹독한 군부 독재 시대를 살았던 국민들 역시, ‘정치와 얽히는 군’을 곱게 바라볼 리 없습니다.



‘상명하복’에 익숙한 군을 이용한 권력자들

군인이었지만 ‘보통 사람’을 내건 노태우 후보가 1987년 직선제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12ㆍ12 쿠데타 주역들이 반란 수괴죄로 법정에 서면서 군은 정치와 결별하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엔 정치가 군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1992년 14대 총선을 앞두고 상부에서 병사들에게 여당 후보를 찍으라고 요구한 사실을 폭로한 ‘이지문 중위의 양심선언’이 있기 전까지, 군대는 여당에 몰표를 주는 부정선거의 '온상'이었습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전후로, 국군사이버사령부 대북심리전단 요원들이 여권에 유리한 댓글공작에 투입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7년 3월, 기무사가 계엄령 선포를 검토한 사실이 문건을 통해 드러나기도 했지요. 모두 권력자와 교감 없이는 추진하기 힘든 일입니다.

권력자 눈에 군은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쉬운 집단입니다. ‘상명하복’으로 움직이는 군 조직의 특성상, 상부 명령을 거역하기 힘들거니와 대규모 동원도 용이하기 때문이지요.


우리 군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군인에 대한 예우가 남다른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군의 정치적 중립’ 위협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답니다. 최근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에 군을 이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입니다. 2018년 이라크, 독일의 미군 주둔 부대 방문 당시, 미군들에게 2016년 대선 캠페인 ‘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문구가 적힌 모자에 잇달아 사인해준 것이 대표적입니다. 지난 6월엔 ‘흑인 사망’ 시위 사태 진압 관련 기자회견을 마치고 교회 앞에서 성경을 들고 사진을 찍을 당시,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동행해 논란이 됐습니다. 급기야 밀리 합참의장은 ‘성경 이벤트’ 들러리를 선 데 대해 “가지 말았어야 했다”며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현역 군인은 특정 정파를 편들지 않는다’는 지침 위반을 의식한 것이지요.



“불편하시죠”는 추 장관이 국방부에 했어야

우리 헌법 5조 2항에는 ‘국군의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준수한다’가 아닌 ‘준수된다’라는 표현이 눈길을 끕니다. 군이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그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군과 정치권 쌍방의 의무를 못 박은 것이지요.

이 조항을 ‘서 일병 특혜휴가 의혹’ 사건에 적용하면, 추 장관은 군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협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 보좌관을 동원해 아들의 휴가에 개입했고, 국방부에 파견된 당 소속 인사가 통역병 선발에 개입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건은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군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서 일병의 ‘비정상적 휴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병사들까지 나오면서, 휴가 규정이 흔들리고 군의 위신과 사기는 땅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검찰이 지난달 28일 추 장관과 아들 서씨, 휴가를 문의한 보좌관에게 모두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뒷감당은 온전히 군의 몫이 됐습니다. 휴가 연장 전화를 받은 지원장교(대위)와 지역 대장(중령)에 대한 수사는 군으로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통역병이 됐을 능력 있는 내 아들이 제비뽑기로 불이익을 당했다”던 추 장관은 지금도 자기 아들만 억울하다는 것 같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군에 대한 사과나 유감 표명은 전혀 없으니까요. 돌이켜보면 “불편하시죠”는 오히려 추 장관이 서욱 장관에게 건넸어야 할 위로가 아닐까요. 뒤집어 이야기하면, 서 장관이 추 장관 면전에서 최소한 '유감 표명'이라도 받아왔어야 했다는 의미입니다.




정승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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