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며 위로전문을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전해진지 하루가 채 안돼서 이뤄진 발 빠른 대응이다.
다른 외국 정상이 코로나19에 걸렸을 때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과도 대비된다.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가 사실상 물건너 가면서 대선 이후를 바라본 포석을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비공개 친서 대신 이례적으로 공개 전문을 활용한 것부터가 11월 미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바람 하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이날 전문을 통해 “뜻밖의 소식에 접하였습니다”라며 “나는 당신과 당신의 가족에게 위문을 표합니다. 나는 당신과 영부인이 하루빨리 완쾌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라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위로 전문은 230자 가량의 짧은 글이지만 “당신과 영부인께 따뜻한 인사를 보냅니다” 등 살가운 표현이 주로 쓰였다. 이 같은 수사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주고 받는 비공개 친서에서 주로 쓰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례로 ‘워터게이트’ 특종기자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수십차례 교환한 북미 정상간 친서에서 ‘나 자신과 각하 사이의 또 다른 회담은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것’ 등의 미사여구를 썼다.
특히 김 위원장이 친서 대신 위로 전문을 보내고, 이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전격 공개한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위로 전문이 뉴욕 채널을 통해 서한 형식으로 전달됐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백악관의 공식 언급에 앞서 위로 전문을 선제적으로 공개했다는 건 김 위원장이 북ㆍ미 정상간 신뢰를 자신한다는 뜻일 수 있다.
코로나19 확진 이후 당선 가능성이 급락하는 등 재선 레이스 최대 위기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 위원장이 “당신은 반드시 이겨낼 것”이라는 공개 메시지를 보낸 대목도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 재선에 악재로 작용할 고강도 도발은 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려 한 것으로 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 10일로 예정된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또한 북미 간 신뢰를 깨지 않는 선에서 관리하겠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북한이 불확실성을 제거해 준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남은 대선 레이스 동안 ‘북한 문제의 안정적 관리’를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포장할 수 있게 된다.
북한으로서는 미 대선 이후를 내다보는 포석인 셈이다. 김 위원장 입장에서는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톱다운’(하향식) 방식의 북미 대화가 재개 되는데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전략적 인내’를 대북 정책으로 채택했던 버락 오바미 전 대통령 등 전통적으로 민주당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관심이 적었던 점까지 감안한다면,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 재선 성공에 ‘배팅’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할 경우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대화가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기대가 반영된 결정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실종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의식한 선택이라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김 위원장이 이번 위로 전문을 통해 정상국가 수반이라는 이미지를 다시 한번 심어주려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