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세계에 미친 영향 중 하나는 서양의 문화적 우월감에 구멍을 냈다는 점이다. 미세한 바이러스와 마스크라는 물건이 세계가 표준으로 삼아온 서양 지식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서양의 편견과 위선을 노출시켰다. 대유행 시작 후 상당 기간이 지나도록 세계보건기구(WHO) 및 유럽과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일반인의 마스크 착용을 권하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동아시아인을 상대로 하는 인종차별적 행동이 보고되었다. 그러던 서양의 많은 나라에서 이제 마스크 착용은 의무가 되었다. 마스크에 대한 태도 변화는 유럽 문화를 지키고자 얼굴을 가리는 복식을 규제하는 근래의 법적 동향에 도전을 가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2010년 프랑스는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의상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 법률이 이슬람 여성 복식인 니카브와 부르카를 겨냥한 것이고 공립학교에서 히잡 착용을 금지한 2004년 법률과 동일한 문화적 맥락에 있음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히잡 착용을 금지하기 위해 모든 종교적 상징물의 착용을 금지했듯이, 종교 차별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이슬람 복식을 금지하기 위해서는 얼굴을 가리는 모든 종류의 의상을 금지하는 보편적 표현을 취해야 했다. 법률이 발효할 때 프랑스 정부는 “공화국은 얼굴을 드러내고 살아 간다”는 안내문을 배포했다.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여성의 제소로 그 법률은 유럽인권재판소에서 다투어졌는데, 재판부는 그 법률이 사생활과 종교의 자유 등을 보호하는 유럽인권협약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러한 복식을 금지하는 근거로 성평등과 공공안전도 거론되었으나 재판부는 그 논거들은 배척하고, 얼굴을 가리는 것을 '함께 살아감(vivre ensemble)'에 필수적인 사회적 소통을 거부하는 것이므로 함께 살아가는 타인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금지할 수 있다는 논리를 수용했다. 그 후 벨기에, 덴마크, 오스트리아, 불가리아, 네덜란드, 스위스와 독일의 일부 지자체, 캐나다의 퀘벡주가 같은 취지의 입법을 도입했고, 유럽인권재판소는 벨기에의 법률을 같은 법리로 정당화했다.
코로나19의 대유행은 그러한 '얼굴의 문화정치'를 난관에 봉착하게 만들었다. 함께 살아가는 좋은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얼굴을 드러내야 한다는 국가의 엄명이 얼굴을 가려야 좋은 시민이 된다는 가르침으로 졸지에 바뀐 것이다. 마스크가 부족할 때 시민들은 목도리 등 무엇으로라도 얼굴을 가려야 했으니 니카브라 해서 기능이 다르지 않았겠다. 하지만 법을 준수하자면 니카브는 벗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공공장소에 나가야 하는 황당한 사태가 되었으니 국가의 분부가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인권단체의 질의와 항의에 대해 프랑스 정부는 얼굴가리기 금지법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답변했다. 프랑스의 법률은 그나마 보건을 위한 마스크 착용을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두고 있지만 벨기에의 법률은 그러한 규정마저 두고 있지 않아, 방역을 위한 긴급권 발동의 일환으로 마스크 착용을 용인하면서 동시에 의무화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마스크 착용은 일제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나 그 기원은 따지지 않고, 단지 검찰청 포토라인에 선 권력형 피의자 또는 대형 경제사범의 초상권을 보호하기 위한 용도로 적합한지를 이따금 묻는 정도다. 논란이 적어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