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경험 부족' 스가, 미중 대립서 균형 잡을 수 있을까

입력
2020.09.27 20:30
유엔 연설서 코로나19 대응 등 다자간 협력 강조
日매체 "미중 간 중개역으로 존재감 높이기 나서"
내달 방일하는 미중 외교수장들과 회담 활용할듯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유엔총회 연설로 다자외교 무대에 데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해 주요국 정상과 잇단 전화회담으로 외교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 불식에도 적극적이다. 당분간 미일안보동맹을 주축으로 아베 노선을 계승하되, 경제 회복을 고려한 중국과의 관계에도 공을 들이는 모양새다.

스가 총리는 26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 일반토론의 비디오 연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미증유의 위기는 자칫 분단과 단절로 기울기 쉬운 국제사회를 협력으로 되돌려 놓았다”며 “다자주의는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강해지고 진화했다”고 했다. 며칠 전 유엔총회 연설에서 코로나19를 둘러싼 미중 간 노골적인 신경전이 벌어진 가운데 국제 공조를 강조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22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지적하고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이를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며 응수한 바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27일 이를 거론하며 “스가 총리가 다자주의를 강조한 것은 미중 간 중개역으로서 존재감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연설에서 개발도상국의 코로나19 수습을 위해 차관 제공과 치료제ㆍ백신 보급 등을 강조했다. 인류가 재앙(코로나19)을 극복한 증거로서 내년으로 연기된 도쿄하계올림픽ㆍ패럴림픽 개최하겠다는 의지도 거듭 밝혔다. 이밖에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조건 없는 회담 의사를 밝히는 등 국제무대에서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의 외교 노선을 계승할 뜻을 밝혔다.

스가 총리는 지난 20일 준 동맹국인 호주의 스콧 모리슨 총리와의 전화를 시작으로 미국 영국 독일 인도 등의 정상들과 양자외교에도 주력하고 있다. 현안이 있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중국의 시 주석과도 통화하면서 자민당에서도 “튀지는 않지만 전략적 외교를 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25일 시 주석과의 전화회담에서는 민감한 현안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홍콩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채 긴밀한 협조를 강조했다. 일본의 경제회복을 위해 중국과의 무역 및 투자 확대, 관광객 유치 등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중국 견제를 강화하고 있는 미국 호주 인도 등과 협력을 강조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는 것은 스가 총리에게 쉽지 않은 과제다.

현재까지는 순조롭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NHK는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다음달 일본을 방문해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무장관과 회담하는 방향으로 협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일 정상 간 전화회담 직후 나온 조치로, 왕 부장은 스가 총리와의 회담도 조율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다음달 초 방일해 스가 총리를 만날 예정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25일(현지시간) 스가 정권의 외교 방침을 설명하기 위해 미국을 찾은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일본 국가안보국장을 면담했다.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가운데 스가 총리가 미중의 외교 수장과 차례로 만남으로써 대내외에 존재감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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