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즈버그의 마지막 출근길…全 미국이 함께했다

입력
2020.09.24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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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상징’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미국 연방대법관의 마지막 출근길은 외롭지 않았다. 23일(현지시간) 오전 9시30분 긴즈버그의 관이 워싱턴 연방대법원 청사 앞에 도착했을 때 그를 맞은 건 법원 직원들 만이 아니었다. 수백명의 시민들도 떠나는 영웅을 배웅하기 위해 새벽, 심지어 전날 밤부터 법원 앞을 지키고 있었다. 펜실베이니아와 매사추세츠, 버몬트, 루이지애나 등 미국 각지에서 먼 길을 달려온 이들의 배경은 변호사부터 연안 경비대원, 싱글맘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그 중에는 피츠버그에서 4시간을 꼬박 운전해 전날 오후 10시 대법원 앞에 도착한 덕 스미스(53)도 있었다. 대학생 딸과 함께 왔다는 그는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젊었을 때 콘서트 티켓을 사기 위해 밤을 새곤 했다”며 “긴즈버그는 록스타 그 자체다. 기꺼이 밤을 샐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시민들의 행렬은 길어졌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추모객들의 줄은 인근 의회도서관의 주차장을 가득 채웠고, 퇴근 시간이 되자 4개 블록을 둘러 끝없이 이어졌다고 신문은 전했다.

공식 추도 일정은 이날부터 사흘간 진행된다. 이른 아침 27년간 근무했던 연방대법원에 도착한 긴즈버그의 관은 법원 직원과 경찰이 도열한 가운데 곧장 그레이트홀로 옮겨졌다. 이 곳에서 가족과 친지, 동료 대법관이 참석한 비공개 추도식이 열렸다. 18분의 짧은 시간 동안 여성 랍비(유대교 성직자) 로렌 홀츠블랫이 히브리 기도문을 읊으며 영원한 안식을 기원했고,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추도사를 했다.

추도식의 유일한 발언자였던 로버츠 대법원장은 “어린 시절 오페라 스타를 꿈꿨던 긴즈버그는 대신 법정이라는 무대에 올라 우리 사회를 평등한 정의에 한 발 더 다가서게 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긴즈버그가 내놓은 483개의 다수, 찬성, 반대 의견들이 앞으로 수십년간 법원을 이끌어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정 안 긴즈버그가 앉았던 판사석에는 검은색 양모 천이 드리워져 있었고, 문에는 검은색 휘장이 걸렸다. 대법원 광장에도 사망한 대법관을 예우하는 조기가 게양됐다.

이후 그의 시신이 안치된 관은 일반인 조문을 위해 대법원 청사 중앙 계단 현관으로 옮겨졌다. 일리노이주에서 온 라라 갬보니(52)는 일간 뉴욕타임스에 “긴즈버그를 추모하는 것은 우리는 물론, 어머니 세대를 위한 것”이라며 “그는 법원이 여성을 뇌가 있고 완전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는 인간으로 보도록 했다”고 추억했다. 당파를 초월한 정치권의 조문도 이어졌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부부가 이날 연방대법원을 찾아 조의를 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24일 고인의 관 앞에서 경의를 표할 예정이다.

이틀에 걸친 조문 일정이 끝나면 긴즈버그의 유해는 25일 미 의회 의사당으로 옮겨진다. 현지 언론은 “미 역사상 최초로 의사당에 안치되는 여성”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공식 추도식이 모두 마무리되는 다음 주 긴즈버그는 남편 마틴이 묻힌 알링턴 국립묘지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간다.

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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