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구절절 설명글은 그만, 한눈에 사로잡는 사람

입력
2020.10.02 16:00
203인포그래픽연구소 장성환 대표 인터뷰 
인포그래픽계 퓰리처상 '말로피에' 3년 연속 수상 
"MZ세대는 정보도 감성도 한눈에 알고 싶어해"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모든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여기 코로나19의 모든 정보가 담긴 포스터가 있다. 정의ㆍ최초 발병 장소ㆍ발병 원인부터 예방법은 물론, 증상을 감지하는 법과 감염시 어떻게 해야 하는지까지… 이게 전부가 아니다. 태어난 해 끝자리에 따라 마스크를 판매하는 복잡한 '마스크 판매 5부제' 설명도 들어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종이 한 바닥 안에 담겨 있다.

심지어 한국어뿐 아니라 영어ㆍ일본어ㆍ중국어 버전까지 만들어져 있다. 일본어와 중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기자가 봐도 일본에서는 0120-565653으로, 중국에서는 12345로 전화를 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볼 수 있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는 코로나19. 만약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 한국에서 코로나19에 걸린다면? 만약 외국어를 못하는 한국인이 외국에서 코로나19에 걸린다면? 이런 고민을 한번에 해결해주는 포스터를 만든 주인공, 203인포그래픽연구소의 장성환 대표를 지난달 21일 서울 상수동 사무실에서 만나봤다.


문자 취약계층까지 고려해 4개 국어로 제작 및 무료 배포


사실 코로나19의 정보를 알려주는 포스터는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방역 당국ㆍ지방자치단체ㆍ기업들이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포스터라고 다 똑같지는 않다. 한정된 공간에 얼마나 많은 유익한 정보를 담아 보는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장 대표는 "지하철이나 버스에 붙어있는 코로나19 관련 포스터들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며 기자에게 포스터를 건네줬다. 그는 "팔로 입을 가리는 그림인데 마치 웃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고 전했다. 자칫 정보가 정확하게 전달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림보다 그림 옆 설명이 더 많은 점도 아쉽다. 장 대표는 "그림으로도 정보를 충분히 전달해야지, 글을 보조하는 수단으로 전락하면 안 된다"며 "글은 최소화 하되 예방법 등 실질적으로 도움되는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포스터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실제로 장 대표가 언급한 포스터를 보면 글이 핵심이고, 그림이 보조가 되는 듯한 느낌이다.

특히나 코로나19 관련 정보는 너무나 많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나 쓰는데 불편함을 겪는 노인 등도 코로나19 예방법과 대처법 등 꼭 알아야 하는 것들을 알 수 있게끔 하는 게 장 대표의 목표였다. 그래서 특별히 코로나19 포스터는 무료로 온라인에 배포했다.

그러자 올해 5월 일본에 있는 한국인 교수로부터 연락이 왔다. 직접 일본어로 번역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일본어ㆍ영어ㆍ중국어 4개 국어 버전의 포스터도 만들어졌다. 물론 모두 다 무료로 다운로드 가능하다. 장 대표는 이 프로젝트의 배경을 두고 "코로나19를 고려, 공공에 이바지하는 인포그래픽(정보ㆍ데이터ㆍ지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을 기획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포스터를 만들 때 장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정확한 정보 전달이다. 장 대표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한국어 자료뿐만 아니라 세계보건기구(WHO) 등 영어 자료까지 크로스체킹한다고 했다. 영어 자료의 크로스체킹은 비단 이번 포스터뿐만 아니라 모든 포스터를 만들 때 반드시 적용되는 사항이다.

이번 포스터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꼭 알려야 하는 정보의 취사 선택이다. 장 대표는 "코로나19에서는 무엇보다도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예방법을 포스터 가운데에,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제작했다"고 전했다.

음식 시리즈로 '말로피에' 어워드 3년 연속 수상 쾌거

기자가 직접 찾은 203인포그래픽연구소의 벽은 아기자기한 인포그래픽 포스터로 빼곡히 차있었다. 그런데 포스터 사이사이에 A4 용지만한 액자가 몇 개 걸려 있어 무엇인지 물어봤다. 알고 보니 인포그래픽 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말로피에 어워드' 상장이었다.

203인포그래픽연구소는 올해 포함 3년 연속 말로피에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말로피에 어워드는 뉴욕타임스ㆍ가디언ㆍ로이터ㆍ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세계 각국의 신문과 잡지, 통신사 등이 참여하는 뉴스 인포그래픽 경연장이다. 아르헨티나 지도제작자 알레한드로 말로피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93년 시작됐다.

홍대 부근의 정보를 소개하는 '스트리트 H'의 2017년 9월호 별책부록 '해외 여행 짐싸기 편' 포스터가 시작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사는 'D-130'부터 비행기에 몸을 싣는 'D-day'까지의 과정이 세세히 담겨 있다. 이듬해 출품한 '자가 출판'은 기획ㆍ원고 작성에서부터 인쇄ㆍ제작까지의 과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기자와 인터뷰를 하기 불과 며칠 전에 도착했다는 따끈따끈한 28회 말로피에 어워드 상장은 '음식' 시리즈에 돌아갔다. 김치ㆍ김밥 등 한국 음식은 물론 파스타ㆍ딤섬 등 각 나라의 음식까지 시리즈로 만들었다. '자장면' 포스터의 경우 한국식 자장면과 중국식 자장면의 차이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령 중국식에는 제공되지 않는 단무지가 한국식 자장면 그림 밑에 위치한다.

이 음식 시리즈는 인포그래픽 포스터를 만들던 2015년부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재미로 햄버거 포스터를 만들었다가 오믈렛, 라면 등을 다룬 포스터가 점점 인기를 얻게 되면서 소주, 칵테일 등 주류 시리즈까지 뻗어나가게 됐다. 특히나 2년 전 참여한 홍콩 인포그래픽 회담 등에서 딤섬, 자장면 등이 큰 주목을 받았다.

특이한 점은 큰 제목과 중간제목만 영어로 돼 있을 뿐 나머지는 모두 한글로 적혀 있다는 데 있다. 장 대표는 "텍스트 독해가 안 되더라도 인포그래픽만으로 충분히 심사위원들을 이해시켰다는 뜻이고 이런 게 인포그래픽의 장점"이라고 전했다.

"인스타그램에 익숙한 MZ세대에게 정보도 직관적으로 보여줘야"

장 대표는 "인스타그램 등을 보면 감성조차도 이제는 짧게,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시대"라며 "글보다는 그림과 사진에 익숙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ㆍ1980~2004년생)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했다. 지루한 설명글보다는 그림 정보인 인포그래픽이 '힙한 감성'을 좇는 MZ세대에 훨씬 더 다가가기 쉽다는 얘기다. 또 이들은 '공유하기'에도 익숙하기 때문에 퍼나르기 쉽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장 대표는 설명했다.

실제로 연구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장 대표가 말한 MZ세대다. 매달 젊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아이템 발제부터 스케치 작업까지 직접 작업한다. 김밥 포스터를 만든 직원은 만든 동기를 "김밥 내용물의 색이 알록달록 예뻐서 이걸 살리고 싶어서"라고 설명했다.

이 때 장 대표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전체 맥락을 함께 엮느냐다. 예를 들어 '3ㆍ1운동 100주년 기념' 포스터는 1910년 3월 1일에 일어난 일만을 담는 게 아니라 그 전후에 어떤 사건들이 발생했는지까지 함께 다룬다.

특히나 MZ세대들에 대해 장 대표가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장 대표는 "대학 등 강의를 나가면 (학생들이) 디자인은 너무나 잘하는데 맥락이나 관점 등에 대한 교육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인사이트 퍼스트, 디자인 넥스트(Insight First, Design Next)'로 가야 하는데 선후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래서 그는 학생들이나 직원들에게 작업을 시작하기 전 무조건 마인드맵을 그리도록 한다. 그래픽 디자인에 들어가기 전 큰 그림을 생각하고 세부사항을 검토ㆍ분석하도록 하는 것이다.

장 대표의 이러한 철학은 '인포그래픽 1세대'라는 그의 경험에서부터 시작됐다. 장 대표는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 창설 멤버로서 3년 반을 일하고 동아일보사에서 잡지 디자이너로 일하다 2003년 디자인사무소를 차렸다. 과학동아에 있었을 당시 '과학포기자'였던 그는 취재기자 후배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함께 공부했다고 한다. 장 대표는 "그렇게 '인사이트'를 쌓아가며 일하니 어떤 주제가 와도 두렵지 않게 됐다"고 회상했다.

직접 발품 팔아 사전 취재도…"전문가만의 리그 깨뜨려야"

실제로 아이템 발제부터 모든 것을 연구소에서 직접 하기 때문에 때로는 취재를 할 때 발품을 팔기도 한다. 햄버거 포스터를 만들 때는 홍대 앞 햄버거 가게에 직접 찾아가서 햄버거를 먹어보고, 와인 포스터를 만들 때는 와인전문잡지 기자에게 팩트체크를 받아보기도 한다. 재즈 포스터 때는 월간재즈 편집장에게, 태양계 포스터 때는 천문학 박사에게 자문을 받기도 했다.

그는 "전문가에게 맡긴 영역, 그들만의 리그를 깨뜨려서 이제는 사전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하고, 또 실행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코로나19다. 구구절절 글로 설명하는 대신, 기침하는 사람 그림만 보고도 '기침을 할 때는 팔로 입을 가려야 하는구나'라고 바로 깨달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손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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