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갈등 속 산적한 외교과제 받아든 스가

입력
2020.09.22 21:30
주일미군 주둔비 증액 요구가 첫 시험대
미중 갈등에 양자택일 요구 직면 가능성
'미래지향' 언급에도 한일관계 개선 난망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으로 정상외교를 시작했다. 미중 갈등 격화에 따른 불안한 국제 환경 속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 때 해결하지 못한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 등 산적한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현재로선 별다른 외교 경험이 없는 스가 총리가 직전 아베 정권의 외교노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미일동맹을 주축으로 하되, 중국과는 경제협력을 고리로 관계 개선을 모색할 것이란 관측이다.

스가 총리는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이 24시간 언제든지 일이 있으면 전화를 달라고 했다"고 전했다. 스가 정권에서도 미일동맹에 변함이 없음 것임을 의식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 내에선 아베 전 총리 시절 서로 '도널드'와 '신조'로 부를 정도였던 아베ㆍ트럼프 간 친분에 기반한 밀접한 외교와는 다를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스가 정권의 외교ㆍ안보라인도 이를 의식한 듯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국가안보국장이 22일 미국을 출국한 건 상징적이다. 그는 3박4일간 로버트 오브라이언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을 만나 이지스 어쇼어 도입 중지에 따른 일본의 새로운 미사일 방어 전략 등을 설명할 예정이다.

향후 미일관계에서 첫 과제는 주일미군 주둔경비 협상이다. 양국이 5년마다 맺고 있는 특별협정의 기한이 내년 3월이어서 조만간 협상이 본격화할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현 수준의 4배인 연간 80억달러(약 9조5,600억원)를 요구하고 있다. 스가 정부로서는 적잖은 부담을 안고 있는 셈이다.

아베 정권은 인도ㆍ태평양 구상을 바탕으로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대중 경제협력을 중시해왔다. 스가 정권에서도 당분간 비슷한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스가 정권의 '킹메이커'이자 친중파로 꼽히는 니카이 도시히로(二階俊博) 자민당 간사장의 영향력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실제 니카이 간사장은 지난 7월 중국의 홍콩보안법 제정 강행에 반발해 자민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국빈 방일 취소 요구 결의안을 마련할 때 당 차원이 아닌 당 외교부회 요구로 격하시키는 데 적극 관여했다.

스가 총리도 미중과의 관계에 대해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밝히며 견제와 협력 사이에서 균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해양진출 등에 따라 양자택일을 요구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과의 관계도 녹록치 않다. 스가 총리는 19일 문재인 대통령의 축하서한에 대한 답신에서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해 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양국 지도자들이 '미래지향적 관계'라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지만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배상에 대한 인식은 정반대다. 스가 총리는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 대법원의 판결을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했다.

스가 총리는 특히 자신이 관여한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사실상 파기되자 깊은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분게이슌주' 최신호 인터뷰에서 "일본과 한국 중 어느 쪽이 골대를 움직이고 있는지 '증인'인 미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도쿄의 한 외교 소식통은 "임기 1년인 스가 정권으로선 한일관계 개선을 서두르기 보다 여론 추이를 지켜보면서 신중히 움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김회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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