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이어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역대 최장 장마, 연이은 태풍 피해로 추석 명절 분위기가 우울하다. 신종 전염병과 자연재해 앞에서 민생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복무 특혜 의혹을 둘러싼 정치권 공방으로 민심조차 피폐해지고 있다. 추석을 앞두고 “정치권이 코로나 쓰나미에 역대급 수해·장마로 지친 국민을 위로해주지는 못할 망정 민생과 아무 상관없는 추미애 공방으로 울화만 돋구고 있다”는 원성이 높다.
코로나 사태는 이미 민생은 물론 국민의 신체적·정신적 건강에도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17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우울증 진료 인원은 59만5,724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 증가했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다.
50일 가량 이어진 역대급 장마와 연이은 태풍이 코로나와 겹치면서 추석을 앞둔 민심은 거의 바닥이다. 강원 동해시 거주하는 김모(59)씨는 "태풍 2개가 연달아 몰아치면서 시내 주택들이 아직 복구를 마치지 못한 상태"라며 "코로나19로 딴 지역으로 떠나 있기도 걱정되고 주변 상태가 흉흉하니 명절을 준비할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에서 전국민 통신비 2만원 할인 카드와 자영업자 지원책을 들고 나왔지만 한번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추미애 장관 아들 공방은 코로나와 수해로 입은 국민적 우울감과 울화를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공정 문제에 민감한 2030세대는 추 장관 아들의 특혜성 군복무 의혹을 조국 사태와 연결시키며 “이것이 공정인가”라고 반문하고 있다. 대학생 이모(24)씨는 "군 복무에 이어 인턴 특혜까지 연일 의혹이 터지는데도 ‘무엇이 문제냐’며 엄호하기 급급한 여권 정치인들을 보니 화가 난다”고 했다.
코로나와 역대급 장마는 경제활동의 중추 세대에게 이미 직격탄을 날린 상태다. 2030세대는 코로나 사태가 몰고 온 심각한 취업난 때문에 추석 연휴가 전혀 반갑지 않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박지연(25)씨는 "어느 날은 입을 한번도 떼지 않고 혼자 방에 틀어 박혀 시험 준비만 하기도 한다"며 "그나마 명절에 부모님을 뵙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재충전하면 좋을텐데 코로나19로 고향에 가지도 못해 우울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속출하는 자영업 도태와 실업사태에 4050세대는 지칠대로 지친 상태다. 추석 명절 귀성은 언감생심이다. 경기 시흥시에서 도매업체를 운영하는 최수창(52)씨는 "올해는 휴가 한번 제대로 못 가고 일하는데도 매출 걱정 때문에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간다"며 "개인적인 사정이든 사회적 문제든 가족끼리 모여봤자 우울한 대화만 오갈 것 같아 온 가족 귀성은 일찌감치 포기했다”고 했다.
국가적 재난 속에 민생은 외면한 채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에 대한 원성이 드높다. 특히 해법도 없이 말꼬리잡기 식으로 진행되는 추미애 아들 공방을 향한 여론이 싸늘하다. 직장인 정모(30)씨는 "추 장관 이슈에 뉴스가 쏠려있다 보니 우울감만 늘어서 자주 보는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필터에도 시사를 아예 빼버렸다"고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추석 경기나 민심은 거의 실종 상태다. 고향에서 자녀들의 귀성을 기다리던 어르신들도 이번 추석은 포기한 지 오래다. 전남 장흥군에 거주하는 신모(91)씨는 "자녀와 손주들 손에 들려 보낼 참기름과 고춧가루를 다 준비해뒀는데, 코로나19로 못 온다는 전화를 받고 며칠 내내 섭섭했다"며 "노인 몇 명밖에 없는 마을이 이번 추석에는 더 쓸쓸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떡집을 운영하는 조막순(71)씨도 "30년 넘게 시장에 떡을 팔아왔는데 이렇게 황량한 추석 준비는 처음"이라며 아쉬워했다.
전문가들은 국민적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권이 먼저 나서야 한다고 처방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코로나로 인한 경제 침체는 세대를 불문하고 큰 타격을 줬는데 (추 장관 관련 의혹처럼) 공정성 논란까지 일어나면서 사회적으로 부정적 감정만 팽창하고 있다”면서 ”민생과 민심을 고려한다면 하루빨리 경기침체와 공정성 회복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