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경량화의 즐거움을 전하는 ‘718 박스터 T’ 그리고 내연기관의 포효

입력
2020.09.17 14:00

소강세가 이어지며 ‘뉴 노멀’을 꿈꾸던 대한민국 사회에 코로나 19(COVID 19)의 재 확산이 이어지며 모두를 긴장시키게 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르쉐 코리아는 당초 예정했던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0(Porsche World Roadshow 2020)’을 계획 대비 규모를 축소할 뿐 아니라 철저한 방역 체계와 지속적인 소독 속에서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포르쉐의 기술, 그리고 다양한 차량을 경험하는 시간인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0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건 단연 포르쉐 EV, ‘타이칸’이라 할 수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량화의 힘을 보여주는 ‘718 박스터 T’ 역시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시했다.

무게를 덜어낸 존재, 718 박스터 T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포르쉐 718 박스터 T는 타이칸처럼 최신의 모델, 혹은 최강의 퍼포먼스를 제시하는 존재는 아니다. 되려 새롭게 태어난 박스터의 여러 요소를 제거하고 경쾌함을 기반으로 한 ‘퓨어 스포츠 드라이빙’을 누릴 수 있도록 한 차량이기 때문이다.

실제 겉으로 보았을 때 718 박스터 T의 모습은 여느 박스터와 큰 차이가 없다. 고성능 모델을 암시하는 것 같은 대담한 바디킷이나 거대한 리어 윙 스포일러는 ‘박스터 T’가 추구하는 경량화를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되려 무게를 늘릴 요소이기 때문이다.

대신 718 박스터 T는 20인치 알로이 휠과 20mm 낮아진 PASM 섀시, 그리고 스포츠 크로노 패키지 등을 기본 장착하고 있으며 실내에는 전용의 스티어링 휠과 계기판 등을 갖췄다. 이외에도 도어캐치 스트랩으로 바꾸고, 무거운 소재를 제거, 대체하는 등의 변경이 더해졌다.

이와 함께 파워트레인 역시 인상적이다. 실제 체험을 위해 마련된 박스터 T에는 300마력과 38.8kg.m의 토크를 내는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을 탑재하고 7단 PDK를 조합, 후륜으로 출력을 전달한다. 참고로 공차중량은 1,380kg으로 여느 718 중에서도 가벼운 몸무게를 자랑한다.

성능 자체가 그리 높은 수준은 아니기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의 가속에 있어서도 4.9초 가량의 시간이 소요되고 또 최고 속도 역시 275km/h으로 그리 탁월한 수준은 아니지만 차량의 무게와 MR 레이아웃의 조합 등을 통해 ‘경쾌한 스포츠 드라이빙’을 기술적으로 구현한 차량인 셈이다.

슬라럼에서 돋보인 718 박스터 T

앞서 진행된 포르쉐 월드 로드쇼 2020의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인해 워낙 강력하고 빠른 차량들을 경험한 만큼 718 박스터 T와의 주행은 다소 심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바로 직전, 트랙 위에서 박스터 S는 물론이고 타이칸 터보 S 등을 경험한 만큼 300마력의 존재는 미미하게 느껴질지 모른다. 다만 눈 앞에 펼쳐진 7개의 러버콘, 그리고 U턴 코스는 ‘드라이빙 스킬에 대한 수련’으로 도전의식을 불태우기 충분했다.

좋은 배치였다. 그리고 좋은 조합이었다. 짧은 간격의 러버콘 사이를 연이은 조향으로 지나쳐야 하는 슬라럼인 만큼 사실 강력한 성능은 ‘과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사실 직선거리가 길지 않은 만큼 ‘성능의 아쉬움’이라 갈증은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되려 연이은 조향을 하며 엑셀러레이터 페달 조작으로 출력을 조율하기엔 되려 과분할 수 있는 출력과 같았다. 실제 슬라럼이나 짐카나 등에서는 운전자가 다루기 좋은, 적당한 성능과 민첩한 반응의 엔진이 되려 다루기 좋은 편이기도 하다.

게다가 젖어있는 노면 때문에 약간의 과도한 엑셀러레이터 페달 조작이 이어질 때라면 300마력의 성능으로도 슬라럼 마지막 구간에서는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떼야 한다는 고민을 안기기도 했다.

차량이 가볍다는 건 조향과 조향 반응, 그리고 이후의 차체 안정에 도움이 된다.

실제 연이은 코너를 파고드는 718 박스터 T는 좌우로 롤링을 이어가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없었다. 약간의 과도한 주행 페이스가 느껴진다면 능숙하게 제어하며 운전자와 합을 이루는 모습이 드러나며 ‘PASM’의 가치를 느끼게 했다.

여기에 가벼운 차체는 연이은 제동이 이어지더라도 높은 제동 성능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한다.

분명 하루 종일 이어진 행사 속에서 수 많은 참가자들이 강한 제동을 했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마지막 제동 지점에서는 연이어 ‘기대 이상의 제동력’으로 완벽한 출력 제어를 자랑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포효와 같은 911 터보 S의 질주

한편 718 박스터 T 뒤쪽으로 노란색 911 터보 S(992) 하나가 준비되어 있었다.

662마력이라는 압도적인 성능과 모터스포츠에서 다듬어진 서스펜션 및 차량 셋업, 그리고 이를 보다 효과적으로 구현하는 AWD 시스템이 맞물리며 ‘718 박스터 T’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드라이빙의 가치’를 높이는 존재라 할 수 있었다.

세션 직전 워낙 많은 비가 내리고, 또 세션 중간에도 비가 내리며 911 터보 S(992)의 스티어링 휠을 직접 잡고 엑셀러레이터 페달을 짓이길 수 없었지만 정지 상태에서 단 2.7초 만에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민첩성’은 놀라울 뿐이었다.

게다가 이러한 과정에서 캐빈을 가득 채우는 머플러의 떨림과 폭발적인 사운드는 감탄을 금치 못했던 타이칸 터보 S의 드라이빙과 ‘스타워즈의 포드레이서’를 떠올리게 하는 그 음향적 경험을 단 번에 지워내는 것 같았다.

내연기관 자동차의 매력을 남긴 시간

718 박스터 T와 함께 한 슬라럼, 그리고 911 터보 S(992)가 선사한 폭발적인 주행과 사운드는 전동화 시대로 이어지고 있는 현재, 다시 한 번 내연기관(ICE) 차량에 대한 가치와 즐거움을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실제 절대적인 ‘경량화’를 앞세운 718 박스터 T의 즐거움, 그리고 ‘단순한 빠름’ 이상의 말초적 감각부터 시작되는 고출력 대배기량 엔진의 폭발력을 기반으로 한 드라이빙은 아직 전동화의 드라이빙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내연기관의 시대는 조금 더 남아있는 것 같다.

촬영협조: 포르쉐코리아

모클 김학수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