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 4년 묶이는 '전세 낀 아파트'… 찬밥 신세 전락

입력
2020.09.1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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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 입주 가능 아파트는 '프리미엄' 붙기도

#. 50대 김모씨는 최근 서울 강서구의 전용면적 59㎡ 아파트를 시세보다 낮게 매물로 내놨다. 이 집에는 내년 4월 중순 계약이 끝나는 세입자가 살고 있는데, 계약갱신청구권이 발생하는 올해 10월 중순 이전까지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쳐야 새로 들어올 집주인이 실거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 전에 집을 팔지 못해 계약갱신이 되면 2023년 4월까지 세입자를 내보낼 수 없게 된다"며 "요즘엔 '갭투자(전세를 끼고 주택 매입)'하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제 값 받고 팔기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세가 있는 집'이 주택 매매 시장에서 찬밥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새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으로 세입자에게 보장된 거주 기간이 2년에서 4년으로 늘어난 데다, 실거주 의무가 강화된 규제가 맞물리면서 당장 입주 가능한 아파트에 전에 없던 '프리미엄'이 붙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즉시입주 가능" 아파트에 '프리미엄'

1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전용면적 84.59㎡ 아파트가 호가 15억5,000만원에 급매물로 나왔다. 인근의 공인중개소 대표는 "집주인이 다주택자인데다 내년 상반기 전세 계약이 끝나 최대한 빨리 계약을 하려고 나온 물건"이라고 말했다.

같은 면적 아파트의 실거래가는 15억8,000만원~16억원(7월 거래) 수준인데, 전세를 끼고 있어 낮은 가격 매물이 됐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즉시 입주'가 가능한 같은 면적 아파트 호가는 대체로 17억원 안팎이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면적 59.78㎡도 전세 낀 물건의 호가는 12억원대 후반인 반면, 바로 입주가 가능한 아파트는 지난달 8일 14억원에 거래됐다.

"전세 물건 감소 가속화될 것"

주택 거래 시 매수자는 당장 거래 가능한 물량을 대체로 선호한다. 다만 최근 몇년 사이 갭투자가 활발해지면서 전세 낀 매물이 오히려 인기를 끄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특히 30~40대는 이른바 '영끌 투자'를 통해 갭투자 형태로 집을 장만하는 사례가 급증했다.

이에 정부는 '7ㆍ10 부동산 대책' 등을 통해 조정지역에서 집을 매수할 때 담보대출을 받으면 6개월 내에 입주해야 하는 조건을 붙여 갭투자 물건 취득을 어렵게 만들었다. 서울 강남구 삼성ㆍ청담ㆍ대치동 및 송파구 잠실동은 1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주택 매수시 2년간 실거주 의무가 생겼다.

새 임대차법 시행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실거주를 원하는 사람에게 집을 팔려면 계약갱신청구권이 발생하는 임대차 기간 종료 6개월 이전에 매수자에게 소유권을 이전하거나, 임차인에게 계약만료일에 퇴거하기로 합의를 받아내야 한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은 "세입자에게 보장되는 거주 기간이 늘어나면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혼란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집을 사려는 수요자 입장에선 선택지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전세 물건 감소 현상도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환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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